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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기/India

인도여행 52 - 카주라호행 기차


어느덧 오르차에서 머문 시간도 꽤 지났고,
카주라호로 떠나기 전날밤에, 일행들끼리 숙소에 둘러모여 맥주 한잔과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 와중에.
숙소주인은 우리에게 슬며시 찾아와 짜이 4잔을 내밀며,
떠나기전 자기 숙소 추천글을 방명록과 한국에 있는 인도관련 카페에 좀 써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리고 카주라호에 자신이 아는 사람이 있다며,
카주라호에 도착하면 픽업도 해주고 숙소도 미리 잡도록 연락을 취해준단다.


이쯤에서 다시한번 느끼지만,
주인장 이녀석은 확실히 사업가적 기질이 있다.




다음날 아침해가 뜨자마자,
다시금 짐을 꾸리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아침이라 그런지 날씨가 좀 쌀쌀했는데,
카주라호로 가는 열차는 도통 언제쯤 도착할런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카주라호까지 가는 열차 종류는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이번에 처음으로 'll' 이라는 등급의 기차를 이용해 볼 수 있었다.
보통 인도기차의 등급은 1A, 2A, FC, 3A, CC, SL, II 으로 나뉘는데,
그 중에 최하위 등급이 바로 'll' 이다.



사진출처 : http://www.willys-mb.co.uk/india-trains.htm

일말의 편안함도 제공하지 않는 의자


'll' 은 second sitting 좌석의 줄임표현인데,
몇몇 여행자들에게 들은 이 좌석의 특징은,
공원 벤치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나무의자와 좁은 공간에서 우글거리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어쨋거나,
최하위 등급이라...
아주그냥... 흥미진진해 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설레임도 잠시,
아침부터 쌀쌀한 날씨 때문에 우리는 본능적으로 따뜻한 곳을 찾아 우리 몸을 근처 역무실로 이동시켰다.

낯선이의 방문에 다소 당황한 역무원에게 우리는 어색한 웃음을 보인 후,
염치없이 따뜻한 램프 옆에서 몸을 녹이며 기차를 기다렸다.


역무원 사람들은 참 친절했다.
그들은 우리가 장난삼아 얘기했던,
'아~ 따뜻한 짜이 한잔 마셨으면 참 좋겠다^^' 는 개드립에도 흔쾌히 고개를 끄떡이며 짜이를 대접해줬다.




기차가 도착할 시간이 다가오자,
역무실을 나와 선로옆에 서서 영양만점 바나나를 한입 물고 있는데,
기찻길에 소 한마리가 어슬렁 거리는 모습이 눈에 띄였다.

곧 열차가 들어오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한 일이었음에도,
다른 것보다 난 인도사람들이 과연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다.

'힌두교를 믿는 인도에서는 과연 선로에 난입한 소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소를 위해서 중간에 기차를 세우진 않을까?
아니면 먹이로 소를 유인해서 바깥쪽으로 끌어낼까?


나의 이런 쓰잘떼기없는 호기심을 알기나 하는지,
어느덧 기차는 선로에 서서히 진입하고 있었고,
소는 여전히 '까르페디엠' 정신으로 여유롭게 선로에 난 풀을 뜯고 있었다.


잠시후,
이렇게 숨죽이며 모든 상황을 매의 눈으로 관찰하고 있던 내 시선에,
순간적으로 인도인 몇명이 나무작대기를 가지고 나오는 모습이 포착됐다.

그리고는 소에게 다가가 사정없이 막대기로 때리며,
소를 선로밖으로 몰아내 버렸다.



'아, 이런 간단한 방법이..'

쓰잘떼기 없던 호기심은 그렇게 쉽게 종결되었고,
내가 상상했던 힌두교의 나라 인도는 그 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드디어 기차에 역으로 들어왔다.
열차안에 들어서자마자 이미 사람들은 꽉 차 있었고,
막상 자리를 잡으려고 보니,
출발하기전 그렇게 두려워했었던 나무의자 마저도 자리가 없어서 배낭을 깔고 앉았다.


그리고 미치도록 싼 좌석가격때문인지,
객실에는 인도의 서민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듯 보였는데,
나로서는 인도 사람들의 생생한 생활모습을 더욱 가까이 볼 수 있는 것 같아서 오히려 좋았다.




잘 달리던 기차는 중간에 기차역이 아닌,
허허벌판 한가운데에 잠시 정차를 했었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 곳에서 그냥 내리고, 어떤 사람들은 올라타고..
몇몇 사람들은 잠깐 벌판에서 용변을 해결하기도 했다.

이 모습이 처음이라면 신기하게 생각할법도 한데,
이젠 그냥 그러려니 하는 나를 보니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그렇게 한동안 알 수 없는 상황들이 지나간 후.
4시간만에 비로소 카주라호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