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가기/India

인도여행 56 - 야크 치즈 시식기


카주라호에 온지 3일 정도가 지나자, 이젠 딱히 할 것도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마을 외곽길을 따라 한바퀴 돌고 와도 겨우 30분밖에 걸리지 않는 동네라,
이미 볼 거란 볼 것은 거의 다 구경한 상태였다.

결국 이제 남은 것은 그저 맛집 하나 발굴해서, 신나게 먹어보는 재미뿐이었는데,
특히 우리는 숙소 옆에 있는 빵집을 자주 이용했다.



사진출처 : www.flickr.com/photos/poita/440662021/

빵집 주인은 네팔 사람이었는데,
말솜씨나 인상이 참 푸근해서 이곳에서 케잌을 살때면 항상 기분이 좋았다.

다른 사람들도 그곳을 꽤 좋아했는지,
그곳에서 인기있는 케잌이나 과자를 사려면,
오전중으로 들려야만 원하는 걸 골라 살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언젠가 그곳을 방문했을때,
우리가 그렇게 탐내던 쵸코케잌과 아몬드 쿠키가 이미 팔렸다는 사실을 통보받았고,
애석한 마음에 쉽게 그 곳을 떠나지 못하고 파리떼 마냥 매대 앞을 배회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왠일인지 그날따라 진열대를 유심히 살펴보게 됐는데,
뭔가 특이한 것을 발견했다.


그 진열장 안에는,
다른 케잌이나 쿠키에 비해 월등하게 비싼 가격인 치즈가 있었다.
쵸코케잌과 비교하면 거의 3배에 육박하는 가격이다


그것은 바로 'YAK CHEESE'



사진출처 : http://flickr.com/photos/69108198@N00/3195885975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겉으로 보기엔 꺼끌꺼끌한 것이,
마치 80년대 쓰던 비누같이 생겼는데 말이다.


"아니, 이건 왜 이렇게 비싸요?"

내 물음에 빵집 주인은 짧은 영어 단어 몇개를 속사포로 내뱉었다.


"스테미나... 굳! 굳! 유.. 스테미나 베리 굳~"


한마디로 아주그냥 건강에 와방 좋다는 건데,
역시 비싼 건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아주 잠깐 동안 이성을 잃었고,
잠시후 정신을 차려보니 내 손에는 이미 야크 치즈 한봉지가 들려있었다.

물론 벌써부터 건강을 챙기려 한다거나 하는 뜻은 없었다.
다만, 순수하게 왜 이런 가격 차이가 발생하는지에 대한 미시경제학적 호기심을 해결하고자 했을 뿐이었다.



사진출처 : www.flickr.com/photos/poita/440662021/

어쨋거나,
새로운 음식을 맛 볼 생각에 들뜬 기분으로 봉지를 펼쳤고,
숙소에 가져가기 전에 살짝 먼저 맛을 볼 요량으로,
치즈를 조금 잘라 히죽거리며 입안에 털어넣었다.


그런데 그 순간,
입 안에서는 꾸린내의 향연이 울려퍼졌고,
그것은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마냥, 내 혀감각을 4분의 2박자 간격으로 마비시켰다.

뭐랄까, 심하게 부패된 것을 씹는 맛이었는데,
고작 3초정도 입안에서 오물거리다가, 결국 역겨움을 참지 못하고 허공으로 뱉어버렸다.


이미 입 안에서 사라졌음에도 그놈의 썩은내는 한참 동안 내 입 속을 배회했고
숙소에 도착해서 몇번을 물에 헹궈댄 후에야 조금씩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때마침 오르차에서 만난 누님들이 숙소로 돌아왔는데,
나는 혼자만 이 맛을 알기엔 너무 섭섭한 나머지,
누나 한명에게 악마처럼 귀에 대고 소근거렸다.

"누나, 이거 한번 먹어봐요. 야크 치즈라고, 아주 맛이 기가 막히네."


누나는 배가 고팠는지,
별다른 생각없이 큰 치즈 조각을 한입에 넣고 맛있게 씹어댔고,

정확히 5초후,
순간, 안색이 퀭해지며 화장실로 달려가더니,
입에 있던 걸 모두 뱉고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하아...
ㅡ.ㅡ;;;
'이거 좀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는데....'



잠시후,
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나가 힘없이 밖으로 나온 후,
수척해진 표정으로 내게 조용히 말했다.




순간 신변의 위협을 느낀 나는,
잽싸게 방으로 들어가 한국에서 가져온 '가그린'을 찾기 시작했다.

확인해보니 다행히 아직 1번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양이 남아있었고,
냉큼 누나에게 달려가 조공으로 바친 후에야 사건은 조용히 마무리 될 수 있었다.



아무튼간에 야크치즈,
참 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