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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기/India

인도여행 65 - 싸이클 릭샤


드디어 바라나시를 떠날 시간.
독한 약을 먹어서인지 하루 종일 나를 괴롭히던 몸살은 언제그랬냐는 듯 잠잠해졌지만,
폭풍설사가 그 뒤를 이었다.


감기 몸살은 그저 예고편에 불과했었던가..-_-


비록 몇번의 화장실 출입으로 인해,
몸속의 모든 것을 미련없이 내보냈지만,
나약한 마음은 접어두고 일행들과 함께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뱃속에서 시작된 미세한 진동이 괄약근을 향해 공격해 올 때마다,
나는 정로환을 아작 아작 씹어먹으며 다시한번 전의를 불태웠고,
배낭을 어깨에 멘 채, 일행들과 기차역으로 가는 싸이클 릭샤[각주:1]를 잡아 세웠다.

일행이 5명이라 싸이클 릭샤 3개로 나누어 탔는데,
나와 누나가 한 차에 타고, '오르차' 누님들이 또 다른 한 차, 그리고 캐나다인 '마크'는 혼자 따로 탔다.
그렇게 3대의 싸이클 릭샤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바라나시의 밤길을 달렸다.


한참을 나란히 달리던 와중에,
우리 뒤에 있던 마크의 릭샤가 우리를 앞질러 나왔는데,
황당하게도 마크가 입에 담배를 하나 문 채 운전석에 앉아서 페달을 밟고 있고, 릭샤꾼을 손님석에 태운 후 가고 있었다.


'아...쟤도 참, 특이한 캐릭터야..'

일전에 강가에서 타는 보트도 통째로 빌려서 직접 노를 저어가더니,
싸이클 릭샤까지 직접 몰 생각을 하다니. 이녀석의 적극적인 성격은 알아줘야 했다.



사진출처 : http://www.tropicalisland.de/india/uttar_pradesh/varanasi/images/VNS%20Varanasi%20or%20Benares%20-%20cycle-rickshaws%20dominate%20the%20streets%20in%20the%20city%20center%2001%203008x2000.jpg

마크 녀석이 얼마나 빠르게 페달을 밟아댔는지,
한참을 가도 마크의 릭샤는 보이질 않았는데,

바라나시의 중심 도로에 이르렀을 무렵,
마크의 릭샤가 교차로 한가운데에 멈춰 있는게 보였다.

마크와 릭샤꾼은 릭샤옆에 서 있었고,
그 옆에는 인도 경찰관이 분노한 얼굴로 그들을 마주 보고 있었다.



대체 무슨 영문일까 싶어서 그들 가까이 다가가보니,
마크가 릭샤꾼을 뒤에 태우고 가는 모습이 경찰관 눈에 띄인 모양이다.

경찰관은 감히 손님이 운전하게 내버려 두고,
심지어 그 뒤에 타고 온 것을 두고 릭샤꾼에게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리고는 갑자기 가지고 있던 채찍으로 교차로 한가운데서 릭샤꾼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릭샤꾼은 길 바닥에 엎드린 채 손이 닳도록 빌었고,
난처해진 마크도 옆에서 사정을 얘기해봤지만,
경찰관은 전혀 상관없이 곤봉과 채찍으로 릭샤꾼의 몸 이곳저곳을 마구 때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정신이 멍해졌다.

문화적 충격이었다.


도시 한복판에서 경찰관이 한 사람을 그토록 심하게 폭행할 수 있다는 사실.
맞는 사람은 그저 잘못했다며 손을 비벼대야만 한다는 사실.

그러고보니 여행을 하면서 잠시 잊고 있던 것이 있었다.
인도에는 카스트 제도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헌법상으로는 이미 오래전에 폐지되었지만, 아직도 인도인의 삶 속에는 카스트 문화가 뿌리깊게 박혀있었다.


잠시 후,
경찰관의 구타로 인해 어색해진 분위기 속에서,
릭샤꾼은 다리를 절뚝이며 다시 자전거를 몰았고,
마크는 미안한 마음에 얼굴이 굳은 채로, 바라나시 기차역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인도를 찾는 수많은 여행자들이 알 수 없는 해방감을 꿈꾸며 찾아오곤 한다.
그 곳에는 왠지모를 이벤트가 있을 것 같고,
평소에는 절대 할 수 없었던 일을 여행지에서는 대범하게 진행해버리곤 한다.

그리고는 마치 '나는 자유인이야.' 라는 생각.

웃음이 나온다.
이 얼마나 '소심한 자유인' 인가?



바라나시역에 도착하자,
마크는 릭샤꾼에게 500루피 지폐 1장을 건너주었다.
아마도 자신때문에 몽둥이 찜질을 당한 미안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릭샤꾼은 지폐를 받아들고는 연신 상체를 90도로 굽히며 고맙다고 인사를 해댔는데,
내겐 이유를 알 수 없는 먹먹함이 느껴졌다.


이 느낌은 분명 함락직전의 괄약근 때문만은 아니였다.


이래저래 생각이 깊어지는 밤이다.




  1. 세발 자전거로 사람을 태워주는 이동 수단. (세발 오토바이는 오토 릭샤라고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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