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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기/India

인도여행 96 - 암리차르 가는 길

사진출처 : http://commondatastorage.googleapis.com/static.panoramio.com/photos/original/27961385.jpg

아침해가 떠오르자,
버스는 바라나시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맘 같아서는 단숨에 릭샤를 잡아타고 갠지스강으로 달려가서,
가트도 바라보고, 자주가던 식당에 들어가 맛있는 빵과 라시도 먹고 싶었지만,

다음 목적지인 '암리차르'행 기차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러니 하게도,
마음속으로 제발 기차가 연착되기 바라며, 손바닥이 닳도록 빌고 또 빌었는데,


내 바람을 누군가 들은 걸까?

평소엔 8~9시간씩은 기본으로 늦던 기차가,
왠일인지 처음으로 예정 시간에 칼같이 맞춰 들어오는 기적이 일어났다.






역시 나는 기적을 부르는 사나이..

(근데 왜 항상 반대냐고!!!!)





바라나시에서 암리차르까지는 기차로만 꼬박 26시간이 걸리는데,
나는 이미 첸나이에서 뭄바이로 갈 때, '26시간 기차'를 경험해봤기 때문에 사실 '거리'가 그리 중요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번엔 말을 나눌 일행까지 있으니까...;; 혼잣말은 안해도 되잖..)


다만 애초에 표를 끊을 때,
누나의 표가 '좌석이 확정되지 않은 표'라서,
열차에 오른 후에도 역무원과 여러번 이야기를 해야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나는 표 검수를 하는 역무원를 따라다니며,
기차의 제일 처음칸부터 마지막 칸까지, 여러번 왕복을 해야 했는데,

운 좋게도 열차 통로를 다니며,
다양한 등급의 열차 좌석을 구경할 수 있었다.

특히 주방칸을 지나 고급 객실로 들어서자,
그들의 창문에 달린 멋진 커튼, 천장 붙어있던 에어컨,
벽면엔 멋진 탁자와 아주 푹신해 보이는 분홍색 침대가 눈에 띄었다.


인도와서 이제까지 최하등급 객실인 'II' 이나,
최하에서 바로 윗등급인 'SL'만 타봤던 나로서는,
처음보는 럭셔리 객실모습에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었지만,
겉으로는 최대한 담담하게, 마치 이런 객실을 많이 이용해 본 것처럼 행동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뭐, 그래봤자,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과 구질구질한 내 행색은 이미,

'안녕하세요. 전 II 등급 좌석 승객입니다^_^'

라고 역무원에게 친절히 설명하고 있을 뿐이지만..




그러고보면 참 웃긴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같은 속도로 움직이고 있음에도,

각 칸마다 이른바 '등급' 이라는 것으로 나뉘어,
한 쪽은 그야말로 럭셔리 생활을 하고 있고, 한 쪽은 바닥에 쓰레기가 넘쳐나는 곳에서 쪽잠을 자고 있으니 말이다.


마치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피라미드 구조처럼,
많은 돈을 지불한 소수의 사람들이, 적은 돈을 지불한 다수의 사람들 보다 월등히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었다.



'부의 획득과 분배'에 있어 형평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이 시점에서,

과거에 '혈통'을 따져가며 귀족, 평민, 상민으로 나누던 계급사회나,
요즘 시대에 '돈'으로 사람을 따져가며 부자, 평민, 거지로 나누는 사회나,

나는 대체 이 두 사회가 본질적으로 뭐가 다른 건지 잘 모르겠다.




간만에 마르크스의 '자본론'에나 나올법한 생각을 해대니 머리가 아파왔지만,

사실 암리차르행 열차를 타고 오면서,
누나와 나는 서로 '정치와 사상'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거참, 나도 인도 여행을 출발하면서,
별에 별 경험을 할 수 있을거란 생각은 했었지만,

여행지에서 만난 누나와 그것도 달리는 기차안에서,
'자유와 평등, 그리고 미래 한국의 초상' 에 대해 요로코롬 심도있는 토의를 하게 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었다.


물론 이 현상은,
우리가 아메다바드에서 만난 이후로,
거의 하루 종일 붙어다니며 얘길 하다보니,
우리의 대화 소재가 조금씩 동이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우리는,

배가 고프면, 기차가 잠깐 정차했을 때 재빨리 밖에 나가 장을 봐오고,
좀 졸리다 싶으면, 앉은 자리에서 곧바로 침낭을 펼치고,
이래저래 심심하다 싶으면, 다른 열차 칸으로 살포시 산책을 나가곤 했다.


이제 더 이상 이곳은 기차가 아니라,
그야말로 또 하나의 숙소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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