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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기/India

인도여행 99 - 잘리안왈라 공원


황금사원을 나와 근처에 있다는 '잘리안왈라 공원'에 들렸다.

얼핏 들은 바로는,
예전에 인도인 대학살이 일어난 장소라고 하는데,

그렇다고 우리가 딱히,
예전부터 그러한 사건에 관심이 있었거나,
역사의 현장에서 "Peace"를 외쳐보고자 해서 온 것은 아니었다.


그저 저녁먹으로 밖으로 나왔다가,
황금사원 바로 옆에 공원이 있다길래 겸사겸사 들렸던 것 뿐이다.




그런데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대학살 당시에 총탄자국을 보고 있자니,
마치 나도 역사 속 그 자리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뭐, 인터넷에서 조금만 검색해보면 알 수 있듯이,
암리차르의 '잘리안왈라 학살 사건'은 대충 이러하다.

1919년 4월 13일,
당시 영국의 집회금지법에 반대하여 많은 인도인들이 이 공원에 모여들었는데,
이를 진압하려는 영국군의 무차별 총격으로 인해 1,5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하필이면 그 날이 인도의 대규모 축제일이라,
정치집회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구경꾼들이 공원에 몰려 있었다는 거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영국군은,
좁은 공원안으로 사람들을 몰아넣고,
유일하게 밖으로 통하는 입구조차 군용차로 막아놓은 뒤,
어떠한 해산명령이나 경고사격도 하지 않은 채, 무자비하게 총을 쏴댔다고 한다.




당연히,
순식간에 공원은 아수라장이 되어버렸고,
도망칠 곳이 없던 사람들은 공원 한쪽에 있는 이 우물로 몸을 던지게 되는데,
그렇게 우물에 빠져 죽은 사람만 대략 150여명 이란다.
 
그 당시에는 심지어 야간 통행금지까지 있던 시기라,
부상당한 사람들은 치료를 받으러 움직이지도 못했고, 결국 밤사이 그 자리에서 모두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 사건의 화룡점정은 바로 그 짓을 총지휘했던 영국군 장교인데,
그 녀석은 이후에 많은 돈을 받고 영국으로 돌아가, 언론의 비호를 받으며 살게 된다.

그리고 결국 지병으로 생을 마감하는데,
그에 관한 책을 보면, 생전에 마지막으로 했다는 말이 가관이다.



"사람들은 나를 비난하곤 하는데 말이야, 당시 암리차르의 상황을 알던 사람들은 나보고 잘했대.
뭐.. 내가 잘했는지 못했는지는 죽고나서 신이 알려주시겄지 ㅋㅋㅋㅋㅋ"


그가 요로코롬 허세섞인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자,

영국의 일간지 모닝 포스트는,
'인도의 구세주', '그는 그의 의무를 다했다' 라는 제목으로 그를 추억했다고 한다.



거참,
살맛나는 세상이다.




어쨌거나 지금쯤은 하늘에서 신에게 제대로 판결을 받고 있기를 바라며,
공원 벤치에 앉아 동네 꼬마아이들 사진을 찍어주며 남은 시간을 보냈다.


해가 저물자,
우리는 다시 공원의 좁은 입구를 따라 밖으로 나왔는데,

생각해보면 우린 너무 쉽게,
그저 몇 번의 발걸음을 통해 이 길을 걸어나왔다..



지금으로부터 90년전,
2천여명의 사람들이 차마 돌아나오지 못했던 이 길을,

우린 너무나 간단하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거참, 아이러니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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