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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기/India

인도여행 107 - 박수나트 화보촬영

내 안에 나도 모르는 아귀의 습성이 존재하고 있던 건지,
맥간에 온 이후, 나는 눈에 보이는 거라면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물론 그동안 미칠 듯한 폭풍설사 때문에,
차마 맛볼 수 없었던 먹거리들을 떠올려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날로 야위어가는 내 얼굴을,
조금이나마 예전의 상태로 되돌리기 위한 일말의 노력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맥간은 내게 축복의 땅이라고 볼 수 있다.


길바닥에 누워있는 개들조차,
살이 디룩디룩 쪄서 걷는 것도 귀찮아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유기견도 살이 찌는 이 동네에서,
'나 또한 요 녀석들처럼 살이 찔 수 있다'는 희망을 얻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맥간의 축복이 내 몸 안에서 역사하기를 바라며,
나는 매일같이 티벳빵과 케이크를 사서 잠자기 전에 섭취하곤 했다.





그러던 와중에,
누나와 바람이나 쐬러 '박수나트' 라는 곳에 있는 폭포를 가보자는 얘기가 나왔고,

서로가 딱히 '스케쥴'이라는 게 없는 이곳에서,
상대방에게 '같이 가자는 동의'를 얻어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맥간에 온 사람이라면,
굳이 갈 생각이 없더라도 한번쯤은 들리게 되는 곳이 '박수나트'라는 곳인데,

우리도 왠지 모를 사명감에 박수나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물론,
출발하기 전에 길거리 할머니로부터 티벳빵 한 봉지를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참을 걸어가자,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길이 나타났는데,

때마침 우리가 가니,
길바닥에 돌을 깔고 정비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덕분에 몇 번은 공사현장을 피해 벽을 넘거나,
바위를 뛰어넘기도 해야 해서 의도치 않게 암벽등산의 재미도 느낄 수가 있었다.


물론 양손을 사용해 벽을 오를 때에도,
오른손에 쥔 티벳빵 봉지는 절대 놓치지 않으려 애를 썼다.




벽을 넘고 작은 길을 따라 오르려 하자,
어디선가 커다란 개 한 마리가 나타났다.

자꾸만 내 뒤를 쫓아오는 폼이 어째 수상쩍다.


내가 걸으면 따라 걷고,
내가 가다가 멈추면 그 녀석도 멈추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녀석의 추종은,
박수나트를 가는 동안 끊임없이 이어졌는데,

녀석의 눈을 자세히 보니,
시선이 온통 티벳빵이 들어있는 검정 비닐봉지에 꽂혀있는 걸로 봐선,
아무래도 녀석의 음식 취향은 나와 비슷한 게 분명했다.



이 녀석..

좋은 건 알아가지고..




나는 차분히 앉아, 티벳빵을 미끼로,

녀석에게 개가 지켜야 할 윤리강령과
"멈춰!, 앉아!, 굴러!" 와 같은 간단한 명령어를 시전했지만,


그 녀석에게 이미 나란 존재는,
'티벳빵을 가지고 있는 웬 이상한 네팔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 같았다.




어쨌거나 서로의 목적은 달랐지만,

우리는 길에서 만난 새로운 일행과 함께 계속 박수나트로 향했고,

박수나트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녀석에게 수고했다며 티벳빵 하나를 건네줬다.


그러자 녀석은 단숨에 빵을 해치우곤,
마치 10여년을 함께 해 온 주인님 모시듯, 계속 내 주위를 호위하기 시작했는데,

이러다가 날 따라 한국까지 쫓아오는 건 아닐지,
조금은 염려가 될 만한 충성심을 보여줬다.




녀석에게 티벳빵을 주고난 뒤,
나는 그제서야 박수나트를 제대로 둘러볼 수 있었는데,

대략 30분에 걸친 이동 끝에 마주하게 된 박수나트는,
위에서 누군가가 호스로 물을 졸졸 뿌리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좀 심하게 갸냘퍼 보인다.

건기라 물이 없을 거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건 무슨 '폭포'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현상이라...


오늘 이 방문을 통해 얻은 거라곤,
그저 나중에 한국가서 '나 예전에 박수나트라는 곳을 가봤어^^' 라고 간신히 말할 정도의 경험담뿐이었다.




박수폭포 옆에는,
한눈에 봐도 정말 대충 지은 게 티가 나는 매점이 있는데,

주인장은 계속해서 불쌍한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며,
뭔가 사주길 기대하는 눈치를 보였지만,
그는 아직 내 손에 들려있던 검은 비닐봉지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다.


나는 괜시레 미리 챙겨온 티벳빵 때문에,
그분들 장사에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함 마음이 들었는데,

때마침 웬 인도 단체 관광객들이 박수나트에 들이닥쳤고,
이윽고 순식간에 매점은 박수나트의 세븐 일레븐으로 변해갔다.




갑작스런 그들의 방문에,
다가가서 얘기를 나눠보니 인도 대학생들이란다.


얘기도중 우리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사진 한번만 찍어도 되요?"

라며 그들은 마치 길거리에서 연예인이라도 만난 듯,
우리와 함께 사진을 찍기를 원했다.


얼떨결에 알겠다고는 했지만,
학생들의 수가 꽤 많아서 마치 화보 촬영이라도 하듯,
이리저리 포즈를 바꿔가며 그들의 촬영 요구에 응해야 했고,

결국에는 그들 사이에서 우리를 찍기 위한 순번까지 정해지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그냥 다같이 찍자!


이 상황을 지켜보던 한 인도인은 마침내 '단체사진'을 제안했고,


'그럴싸한데?...ㅡ.ㅡ?'

솔로몬 같은 녀석의 판단력에,
사진 촬영을 원하던 사람들은 모두 우리 주위로 벌떼처럼 모여들었다.


물론 이 방법도,
서로가 각자 사진기에 담으려 해서,
여러 개의 사진기로 돌아가며 찍느라 시간이 걸리긴 매한가지였지만,


사진을 찍을 때마다 뭔가 포즈를 바꿔줘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던 나로서는,
차라리 이렇게라도 해서 사태를 마무리 하는 편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버엔딩일 것만 같던 화보촬영은,
단체사진으로 인해 소강상태에 접어들었고,

애시당초 보려고 했던 폭포는 기억에서 사라진 채,
우린 앞으로 어떤 포즈를 취해야 더 사진이 잘 찍힐지에 대한 고민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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