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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기/India

인도여행 112 - 상쾌한 아침


델리행 야간버스 안은 생각보다 꽤 쌀쌀하다.
변변한 쟈켓 하나 없던 나는 그저 최대한 몸을 웅크린 채,
버스가 델리에 도착하기만을 두손 모아 기도할 뿐이었는데,

이 모습이 얼마나 불쌍해 보였는지,
옆에 있던 누나는 자신이 두루고 있던 숄을 내게 건네줬고,
덕분에 나는 입이 돌아가려는 극한 상황에서도 생명의 불씨를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고보면,
서로 참 지독한 인연이다.


처음 아메다바드 기차역에서 우연히 만난 후,
중간에 헤어졌음에도 다시 푸쉬카르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났고,

이제는 서로 같은 항공사로 인도에 온 것을 알고,
기어이 귀국 날짜와 시간까지 맞춰서 돌아가는 비행기까지 함께 타고 가게 됐다.


아... 이 얼마나 고무 타이어 마냥 질긴 인연인가.




새벽 찬 바람이 불어댈 무렵,
우리는 드디어 마지막 도시인 델리에 도착했다.


사실 그 동안 여러 여행자들로부터
'델리'에 대한 이런저런 경험담을 주워들을 수 있었는데,



"델리에 가면 삐끼를 조심해!"

"거기는 사기꾼의 천국이야!!"

"절대~ 방심하지 말라고!!!"




뭐, 들은 얘기 중에 그닥 긍정적인 얘기는 눈꼽만큼도 없었다.


덕분에 나는 델리로 출발할 때부터,
남들이 전혀 신경도 안쓸 상황에도 괜시리 긴장하며,
주변을 경계심 어린 눈초리로 주시하곤 했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그들의 말과는 달리 여느 도시와 별 차이가 없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인도를 처음 접하는 곳이 '델리'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물론 그런점에서,
내겐 여전히 '첸나이'가 가장 충격적인 도시로 남아있다. (하아...)




어쨌거나 인도 생활 2달만에,
웬만한 길거리 삐끼보다 더 영악해져버린 우리에게는,
'그 충격적이라는 델리'가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그저 5루피짜리 짜이 한잔을 입에 툭 털어넣은 뒤,
주변을 어슬렁 거리며 빠하르간지로 가는 릭샤를 찾아볼 뿐이었다



"엇! 안녕하세요~"

그때 누군가 뒤에서 우리를 향해 인사를 했는데,
뒤를 돌아보니 맥간에서 일면식만 있던 한국인 남자 2명이 배낭을 메고 서 있다.

그들도 방금전에 도착했는지 빠하르간지로 가려고 했고,
나는 재빨리 머릿속으로 40루피를 4로 나눠본 후,
'n분의 1공식' 을 되뇌이며 그들에게 미소로 화답했다.


"그럼 저희랑 같이 가시죠! ^_^"




때마침 길바닥 한 쪽 구석에,
고개를 숙인 채 잠을 자고 있는 릭샤꾼이 보여서,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봤지만,
얼마나 잠에 취했는지 정신을 못차린다.


큰 목소리로 그의 귀에 몇 번을 더 외쳐대자,
릭샤꾼은 시뻘겋게 충혈된 눈을 천천히 껌뻑이며 우리를 쳐다봤는데,


이리저리 풀어 헤쳐져 떡진 머리.
들판 위에 잡초처럼 여기저기 자라있는 수염.
반쯤 풀린 눈과 살짝 벌린 입 사이로 보이는 누런 이.


나는 나름 첫인상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봤지만,
아니, 이건 무슨 약물중독 근절 캠페인 영상도 아니고,

가히 초절정 폐인의 모습을 눈 앞에서 지켜보니,
과연 그가 운전은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릭샤 요금도 예상했던 금액의 2배(60루피)를 불러대니,
나는 결국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 수밖에 없었고,


입맛을 다시며 다른 릭샤꾼을 찾기 위해 발걸음을 돌리려하자,

릭샤꾼은 다급히 내 어깨를 잡으며 외쳤다.


"헤이! 30루피, 오케이?"





"....오~~ 케이!"


조금 전에 걱정은 이미 기억에서 지워버린 우리들은,
이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잽싸게 릭샤에 올라탔고,
그나마도 자리가 부족한 관계로 나는 릭샤꾼 의자 옆에 끼어 앉았다.


찬 바람을 온 몸으로 느끼며,
릭샤는 델리 시내를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고,

별 생각없이 릭샤 운전석을 구경하던 나는,
계기판 옆에 달린 빨간색 버튼 하나를 발견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이지....

릭샤꾼에게 물어보자, 일단 한번 눌러보라는데,
시키는 대로 해보니, 릭샤 어디선가 조그맣게 "삐~ 삐~" 거리는 클랙션 소리가 난다.


'우와~~~'

호기심에 가득찼던 나는,
결국 리듬 본능을 참지 못하고,
'337박수 리듬'과 '대한민국 응원구호 박자'에 맞춰 버튼을 눌러댔는데,

때아닌 월드컵 응원 분위기에,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대~한민국!" 을 조용히 읊조렸고,
릭샤꾼도 신났는지 리듬에 맞춰 고개를 연신 끄덕끄덕 거린다.


'얼씨구나-'

그렇게 우리는, (아주 그냥 신명나게)
한적한 델리 시외를 지나 빠하르간지로 향했다.




거참, 상쾌한 하루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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