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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기/India

인도여행 60 - 레 미제라블


바라나시에 온지도 하루가 지났을 무렵,
'오르차' 누나들이 갑자기 보트를 타자고 제안을 했다.
나는 살짝 놀라긴 했지만, 내심 한번 쯤은 타보고 싶었던지라 그러겠노라고 대답을 했다.

사실 바라나시에 온 이상 보트를 타는 건.
PC방에 가서 스타를 하자는 것과 다를 바 없이 누구나 한번쯤은 해보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흠칫하며 놀랐던 이유는,
현지인이 노를 저어주면서 가이드 해주는 걸 타는게 아니라,
보트를 하루 통째로 빌려서 우리가 직접 노 저으며 타보자는 거였기 때문이었다.

그사이 어디서 데려왔는지,
'오르차' 누나들은 마크라는 캐나다 남자도 한명 데려와놓고는 같이 보트를 탈 거라고 했다.


그 순간 직감적으로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타게 되면 총 6명인데,
그중에 3명이 여자고, 남자라고는 캐나다인 마크라는 녀석과 카주라호의 순수한 영혼 '용', 그리고 나 뿐이었다.


그렇다면 분명 남자 3명이서 노를 돌아가며 저을테고...
잠깐도 아니고 태양볕을 쬐며 하루 죙일 저어야 한다라.......



유...유레카!!


바쁘게 머리를 굴려보니,
역시나 보트를 타면 개고생 할 게 뻔해 보였다.

게다가 노 젓는 거라면 군대에서 2년동안 고무보트 타며 이미 지겹도록 해봤던 일이라,
돈을 쥐어주면서 저으라고 해도 마다할 판이었다.


결국,
낮에 보트 타는 건 내 취향이 아니라고,
개인의 취향을 존중해 달라는 말도 안되는 얘기를 해대며 슬며시 빠져 나왔다.





내가 보트를 안탄다고 하자,
누나 한명도 타지 않겠다고 했고,
결과적으로 우리 둘을 제외한 4명이서 강가를 향해 출발했다.

그리고 마치 아메리카를 찾아 떠나는 콜럼버스의 함대처럼,
그들이 탄 보트는 천천히 강 저편으로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그리고 한참이 흘러,
해가 질 무렵이 되었을 때,

나는 숙소로 올라오는 'Mr.유' 를 우연히 만났다.


아침에 봤을때와는 달리 많이 야위어 있었는데,
그는 또 나를 보자마자 눈을 크게 뜨고 울부짖듯 말했다,

"아오!! 그 누나들이랑 같이 보트 탔는데, 죽을 뻔 했어요. 진짜."

"네?"


전후사정을 들어보니,
오전에 한가롭게 가트를 거닐고 있던 Mr.유에게 갑자기 보트 한척이 다가왔더란다.
그 보트에는 외국인 한명(아마도 마크)과 한국인 남자 한명(아마도 '용')이 핼쑥한 표정으로 노를 젓고 있었고,
안쪽에는 '오르차' 누나들이 수건을 얼굴에 덮은채 누워있었다는데,
(예상대로 그 보트는 우리 일행의 보트였다.)

보트가 뭍에 닿자 누나들은 다짜고짜 Mr.유를 보트에 태운 후,
순식간에 다시 강가를 향해 출발해버렸다고 한다.

납치 비스무리하게 보트에 합류하게 된 Mr.유는,
그때부터 영문도 모른 채 3인 1조로 죽어라 노를 저어야 했고,
반나절동안 페다링을 한 뒤에야 겨우 숙소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코스라서 잠시라도 쉬면 배가 다시 뒤로 가곤 했다는 말은 두 세번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이거 뭐 긴급출동 SOS에나 나올법한 얘기를 찬찬히 듣다보니,
나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졌고, 문득 아침부터 개고생 했을 순수한 영혼 '용'과 마크가 떠올랐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뒤이어 '용'과 마크, '오르차' 누나들이 줄줄이 숙소에 도착했다.

'오르차' 누나들은 즐거운 경험이었다며 샤워를 하러갔고,
용과 마크는 상당히 지친 모습으로 하루 종일 밥을 한끼도 못 먹었다며 투덜거렸다.
캐나다 소방관 출신이라 체력에는 자신 있다던 마크도 계속되는 페다링에는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오.. '레 미제라블'...-_-
게다가 누나들이 보트에서 찍었다며 보여주는 사진에는,
비명을 지르며 노를 젓고 있는 Mr.유와 용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더 측은했던 점은,
오늘이 용이에게는 바라나시에서의 마지막 날이라 곧바로 저녁 기차를 타고 떠나야 한다는 거였다.


매번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고,
사기란 사기는 다 당하는 용이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안쓰러운 마음에,
마지막으로 밥 한끼를 사주고 기차를 타러 가는 길까지 따라나와 배웅도 해줬다.




부디, 바라나시 일은 잊고.
다른 도시가면 행복하게 잘 살기를.. -_-




  • 김현숙 2010.09.12 12:34

    인도여행기 찾아 흘러들어와서 감쪽같이 다 읽어버렸어요.

    상당한 사진 찍는 실력이 있으신데 색감이 펜탁스 같군요.

    마운트 하신 렌즈가 궁금도 하구요.

    꽤 괜찮은 여행기 하나 알게 되어 기쁘네요.

    다음 여행기도 모쪼록 빨...리..........

    • Mossal 2010.09.13 13:00 신고

      헉, 펜탁스 맞아요.
      메타데이터 없이 사진만 보고 알아맞추신건가요? ;;
      렌즈는 번들과 35/2 달랑 2개입니다ㅎ

      그런데 그나마 있던 것들도 이제 처분하려고요 ㅠ

  • mj 2011.01.11 23:22

    너무 웃겨서 ㅋㅋㅋ 눈물이 다 나네요.

    여태 본것중에 제일 재밌어요.

    오르차 누나들도 대단하지만

    마크, 용이 너무 불쌍 ㅠㅠ ㅋㅋㅋㅋㅋㅋ

    제일 불쌍한건 멋모르고 탔던 유~~ ㅋ

    유는 첫만남부터 계속 억울하다하고 ㅋㅋㅋ

    최고의 프로는 오르차 두분인듯.

  • 뽕짜르트 2011.05.15 02:02

    마크 용 엉엉엉엉 ㅠ,.ㅠㅋㅋㅋ
    상황판단 엄청나신 Mossal님 ㅋㅋㅋㅋㅋㅋ

  • sooyoun 2011.05.28 01:01

    ㅋㅋㅋㅋ너무 웃겨서 댓글을 안달고 그냥 지나갈 수가 없네요 ㅠㅠ ㅋㅋㅋㅋ웃다가 눈물날 것 같아요 ㅋㅋㅋㅋ
    회사에서 눈치보며 조금씩 읽다가 완전 빠져서 집에와서 새벽까지 여행기 읽느라 즐겁습니다 ^^
    글도 너무 잘쓰시고, 여행에서의 좋은 인연도 너무 부럽네요 !!!

  • 1번뻐스 2011.06.05 14:09

    오르차 두분~~ 소 쿨, 소 핫, 소 인크레더블....

  • 한수진 2011.08.31 13:21

    오르차 언니들이 이글을 봤다면...너 잡으러갈지도 몰라....ㅋㅋ

  • 도서관고양이 2011.09.01 15:28

    이거 보면서 웃음 나오는 거 틀어막느라....

    정말.. 개그는 몸개그가 최고인 거 같애요

    아........... 다시 보는 데 넘 우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