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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기/India

인도여행 70 - (네팔) 거리의 군중들


개인적으로 군것질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정말?).
카트만두에 도착한 이후,
나는 의식적으로 군것질을 많이 했다.

바라나시에서의 폭풍설사로 많은 것(?)을 잃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양 볼이 쏙 들어갈 정도로 헬쑥해진 얼굴을 다시 조금이나마 찌우기 위함이기도 했다.


사실 꼭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카트만두에서는 신선한 과일들을 싼값에 살 수 있었고,
길거리 곳곳에는 인도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군것질거리가 널려있었다.


신기한 것은 나와 항상 같이 다니면서,
똑같은 것만 먹었던 누나는 점점 토실토실하게 살이 붙어가는 상황이었다.

아니, 이 누나는 밤에 나 몰래 보충제라도 타먹나? ㅡ.ㅡ;


어쨋거나,
나는 길을 지나다가 음식이 보이기만 하면,
눈에 불을 켜고 주워먹기 일쑤였다.




이날도 역시나 숙소 옆 시장에서 싼 값에 청포도를 한덩이 구입한 후,
포도 몇 알을 입에 넙죽 털어놓고는 흡족한 표정으로 길거리를 나섰다.


여행 도중 잃어버렸던 카메라 렌즈캡도 살 겸,
근처에 있는 '더르바르 광장'도 구경할 겸,

아주그냥 누이좋고 매부좋고,
마당 쓸다 동전도 줍는... 그런 순조로운 발걸음이었다.


그런데 왠일인지 큰 도로에 자동차들이 보이지 않아서, 조금 의아해 할 법도 했는데,
눈치라곤 전혀없던 우리는 역시나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자동차가 없으니 도로로 걸어다녀도 상관없겠다'며 서로 낄낄거리며 좋아해 댈 뿐이었다.

그런데 잠시후,
우리 뒤로 웬 북소리와 함성소리가 들리더니,
수백.. 아니 수천명의 사람들이 도로를 점거한 체 우리를 향해 행진하는 모습이 보였다.





"What the Hell...!!? ㅡ.ㅡ;"

오랜만에 내 입에서는 인도여행 초반에 즐겨쓰던 감탄사가 터져나왔고,
텍사스 소 떼처럼 우리를 향해 돌진해오는 무리들을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저마다 빨간색 깃발을 흔들거나 빨간 머리띠를 두르고 있었는데,
우리는 순식간에 길 한복판에서 그들에게 파묻혀버렸다.


"아니, 대체 무슨일이에요?"

분명히 영어로 물어봤지만,
답변은 힌디어로 돌아와버렸고,
나는 여전히 영문을 모른채 군중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이미 서울의 출근길 지하철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제치고 탈출해 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곳을 빠져나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였다.


하지만 대체 왜 이런 일들이 네팔 시내 한가운데서 일어나고 있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네팔 정국이 불안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얘기는 익히 들어왔지만,
실제로 카트만두에서 피부로 와닿는 느낌은 좀 달랐다.
그것은 마치 1945년에서 1950년 사이에 '우리나라 상태' 와 비슷하달까?


주변 강대국들의 직,간접적인 간섭.
그리고 내부적으로 분열된 정치 세력들.
반발하는 시민들과 그것을 완벽히 통제할 수 없는 네팔 정부.

이 모든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지금의 '혼돈' 을 만들어 낸 것 같았다.




행렬은 끝없이 이어졌다.
그들의 종착지는 시내 중앙에 자리잡은 대형 운동장이었다.

수천명이 운집한 곳 위에는 높은 단상이 있었는데,
작은 땅딸보 남자 한명이 올라오자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울려퍼졌다.

그가 힘주어 외칠때마다,
사람들은 미친듯이 박수를 치며 깃발을 흔들었고,
마치 재림 예수라도 나타난 것처럼 그의 말을 경청했다.


무엇이 이들을 이끄는 힘일까?
자유? 돈? 감성적 선동? 평등?...



여러가지 생각이 뒤엉켜진 가운데,
가게 앞에서 서성대던 누나가 내게 말을 걸었다.

"이야, 이거봐. 청포도 진짜 싸다. 하나 살까?"


네팔에 대한 온갖 잡생각으로 정신이 없던 나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웃으며 대답했다.

"응, 그 옆에 바나나도 하나 사자~"



그래..
자유고 평등이고 나발이고 간에,
일단 살부터 찌우고 보자.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