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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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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여행 93 - (네팔) 효율적인 여행 트래킹이 끝난 후, 우리는 피로를 풀기 위해, 은퇴 후 실버타운에 입성한 사람들처럼 맘껏 요양을 즐겼다. 하루는 한 손에 비둘기 모이 봉지, 다른 한 손에는 우리가 먹을 오렌지를 쥔 채, 작은 나무 보트를 타고 호수 한 가운데에 섬처럼 위치한 '바라히 사원'을 들렸다. 물론 뭔가 굉장한 것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달랑 조그마한 건물 하나 밖에 없는 바라히 사원은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뭔가 부족했다. 아마 그동안 인도와 네팔을 거치며 웬만한 사원이란 사원은 질리도록 봤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는 별 수 없이 그저 계단 위에 앉아 하염없이 호수를 바라보며, 계단 주위로 날아드는 비둘기들에게 먹이주는 일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하지만 녀석들의 식성을 만족시켜주기엔, 먹이가 턱없이 모자랐고, 한없이 흩뿌려대던 먹이..
인도여행 92 - (네팔) 포카라에서의 일상 어느덧 포카라에 도착한지도 10일이 넘었다. 트래킹을 같이 다녀왔던 남자 일행 2명은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델리로 떠났고, 이제 포카라에 남은 것은 '오르차' 누님 2명과 'Mr.유', 그리고 아메다바드부터 쭉 같이 온 누나 한명 뿐이다. 나는 더블 침대가 있는 방을 혼자 쓰기도 뭐해서, 다음날 포카라를 떠난다는 'Mr.유'와 함께 하룻밤 동안 방을 쉐어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분, 알면 알수록 참 특이한 캐릭터다. 국내 유명 대학병원에 레지던트로 있다는데, 하는 행동이 영~ 내가 생각하던 레지던트의 모습과는 다르다. 게다가 여행 배낭이랍시고 메고 다니는 건, 아이들 학교다닐때나 들고다니는 조그마한 '이스트팩' 같은 가방 달랑 하나. 이런 그와 밤늦도록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다음날 새벽..
인도여행 91 - (네팔) 트래킹 이후의 생활 트래킹에서 돌아온 후, 넘쳐나는 빨랫감은 내 심신을 지치게 했다. 일행들은 돌아가면서 숙소옆에 있는 수돗가에서 빨래를 했는데, 이건 무슨 '도비왈라'도 아니고, 반나절 동안 빨래만 하다보면, 대체 여행을 하러 온건지, 빨래를 하러 온건지 정체성의 혼란을 겪곤 했다. 사실 여행 초기에는 빨래비누를 하나사서 일일이 손으로 박박 문지르곤 했는데, 여행을 다니면서 가루비누의 위대함을 발견하게 됐고, 그 후로는 그저 커다란 통에 빨랫감과 가루비누를 탄 물만 넣은 뒤, 나는 그 위에서 발로 신나게 탭댄스만 몇번 추면 끝이었다. 마치 신대륙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내 눈은 금세 촉촉해져 반짝거렸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기쁜 소식을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대단한 것이라 믿었던 걸까? '이미 다른 여행자들도 죄다 ..
인도여행 90 - (네팔) 포카라로 귀환하다 따또빠니 온천에서 일행들과 애증의 재회를 마친 후, 간만에 핫샤워도 하고 회포도 풀면서 기분좋게 잠자리에 들었다. 이제 사실상의 트래킹 일정도 모두 끝난셈이다. 따또빠니에서 포카라로 다시 돌아가려면, 일단 '베니'라는 마을까지 간 다음, 거기서 포카라행 버스를 타야하는데, 여기서 많은 여행자들은 지프차를 빌려타고 '베니'로 이동하곤 한다. 하지만 나와 누나는 '트래킹의 진정한 의미' 를 끝까지 지키자며, 베니까지 걸어가자고 줄곧 주장했는데, 남자일행 2명이 지프차 운전사에게 다가가 몇 마디 얘기를 주고받더니, 우리쪽을 쳐다보고 큰 소리로 외쳤다. "오~ 여기 운전사가 엄청 싸게 태워준다는데?" Goooooooob Job! 녀석들이 지프차 요금을 획기적으로 깎아오자, 우리는 그저 군말없이 엄지손가락을 치켜..
인도여행 89 - (네팔) 따또빠니 그 뒤로도 한참 동안 일행들을 기다렸지만 소식이 없었고, 결국 우리는 기다리기를 포기한 채 산 아래 마을로 향했다. 이때부터는 계속해서 내리막 길이라 힘은 안 들었지만, 죄다 돌계단이라 발바닥이 좀 아팠다. 그리고, 아무리 신경을 안쓰려고 해도, 없어져버린 일행들이 계속 눈에 밟혔다. 아마 옆에 있던 누나도 나와 같은 기분이었겠지만, 굳이 내색해서 무엇하랴. 우리는 그저 다음 목적지인 '따또빠니'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사실 '따또빠니'는 온천이 있는 곳으로 유명한데, 나는 도착전부터 내심 우리나라의 최신식 온천 시설을 기대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왠지 모르게 오늘 저녁엔 내 하반신을 따뜻한 물에 담근 채, 한 손으론 여유롭게 맥주 한병을 쥐고, 귓가에 흐르는 음악에 맞춰 고개를 좌우로 까딱거릴 수 ..
인도여행 88 - (네팔) 엇갈림 결혼식장을 벗어나 다시 한참을 걷고 있자니, 뒤에 쳐져서 걷고 있던 남자일행 2명은, 이젠 대체 어디쯤 있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어차피 길은 하나니까.. 언젠가는 만나겠지.. 그래, 지구는 둥그니까.' 누나와 나는 그냥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그저 묵묵히 앞을 향해 걸었다. (절대 그들을 기다리는게 귀찮아서 그런게 아니다.) 그렇게 긍정적 걷기를 계속 하다보니, 어느 순간, 길 옆에 아주 조그맣게 'Check point' 라는 글씨가 보였다. 말 그대로 트래킹을 하다가 중간에 관리인에게, '우리 지금 이쯤 지나가고 있습니다요~' 라며 체크하고 가라는 곳인데, 솔직히 그냥 통과해도 별 문제 없어 보일만큼 허름하고, 허술하고, 허전해 보였다. 하지만 누군가 방문해 주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관리인을 위해, ..
인도여행 87 - (네팔) 결혼식 한참을 '아이 좋아라~*' 하며 걷던 우리는, 문득 한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중간 중간에 숙소나 집들이 있긴 있는데, 당최 사람들이 보이질 않는 것이다. 차라리 그냥 오래된 집들이면 모르겠지만, 마치 조금 전까지 사람들이 머물렀던 것처럼, 빨래들이 줄에 걸려있고, 집 대문이 안 잠긴 곳도 많았다. 이거 뭐야 대체 -_-? SF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인지, 나는 조금씩 '하지 않아도 될 상상'을 하기 시작했고, 잠시 뒤, 지붕이 불타버린 집을 지날 무렵엔, 내 머리속에서 쓰여지던 한편의 소설은 점점 막장 스토리를 더해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집단으로 UFO에 납치라도 됐든 말든, 사람들의 존재는 '아웃 오브 안중' 이 되어갔고, 나중에는 오히려 아무도 없는 음식점 마당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는 대담..
인도여행 86 - (네팔) 길을 걸으며 푼힐 전망대에서 내려온 후, 고라빠니의 숙소로 돌아왔다. 다들 약속이나 한듯이 1층 난로에 모여,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손을 녹인 후, 뒤이어 밥 먹을 준비를 했다. 메뉴는 역시나 미리 준비해 간 라면. 숙소 주인장에게 뜨거운 물만 필요하다고 하자, 그는 내심 우리가 뭔가 음식을 따로 주문할 걸 기대하고 있었는지, 표정이 그리 밝아보이지는 않았다. 물론 우리도 트래킹 내내 라면을 먹어대서, 지긋지긋 해질 무렵이었지만, 빈곤한 여행자였던 우리에게 숙소 음식 가격은 너무 비쌌다. 어쨌거나 나는 주인장을 따라 주방에 들어가 신나게 라면을 끓였고, 그날 아침도 일행들과 함께 어쩔수 없는 '면식수행'을 했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짐을 챙겨서 곧바로 다음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한 손에는 카메라를 쥐고, 다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