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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기/India

인도여행 87 - (네팔) 결혼식


한참을 '아이 좋아라~*' 하며 걷던 우리는,
문득 한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중간 중간에 숙소나 집들이 있긴 있는데,
당최 사람들이 보이질 않는 것이다.


차라리 그냥 오래된 집들이면 모르겠지만,
마치 조금 전까지 사람들이 머물렀던 것처럼,
빨래들이 줄에 걸려있고, 집 대문이 안 잠긴 곳도 많았다.


이거 뭐야 대체 -_-?




SF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인지,
나는 조금씩 '하지 않아도 될 상상'을 하기 시작했고,


잠시 뒤,
지붕이 불타버린 집을 지날 무렵엔,
내 머리속에서 쓰여지던 한편의 소설은 점점 막장 스토리를 더해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집단으로 UFO에 납치라도 됐든 말든,
사람들의 존재는 '아웃 오브 안중' 이 되어갔고,

나중에는 오히려 아무도 없는 음식점 마당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는 대담함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_-




그런데 어느순간 길 모퉁이를 돌아서자,
수십명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매...매복인가!!?


아마도 지금까지 거쳐온 빈집들의 주인들 같다.


고라빠니에서 출발한 후,
처음보는 현지인들이라 놀랍기도 했지만,
집도 몇 채 없는 이 산간마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군데 모여있다는 게 더 신기했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더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이거 뭐지...동네 5일장이라도 열렸나.
아니면 야바위라도 하는건가?
(야바위라면 나도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


어쨌거나,
흥겨운 음악도 들리고..
상당히 이색적인 광경이다.




사실 다른 사람이라면 그냥 흥미롭게만 보고 지나쳤을테지만,
일단 오지랖하면 한가닥하는 나로서는 이 상황을 쉽게 지나갈 수 없었다.


"What is happening here!?"

옆에 있던 한 사람을 부여잡고,
마치 사건 현장에 출동한 FBI마냥 무작정 물어보기 시작했는데,

그를 통해 지금 이곳에서 결혼식이 열리고 있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씨익)




때마침 건물 안쪽에서는,
이마에 빨간 것들을 붙힌 여자 한명이 나왔는데,

옆에 사람이 말하기로는,
바로 오늘 결혼식의 신부란다.


어쨌거나..
뭔가 이유를 알 수 없는 흥겨운 분위기속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서서히 자진모리 스텝을 밟아가며,
뒤이어 16비트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물론 옆에 있던 누나는 그저 조용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릴 뿐이었다.




어쨌거나 흥미로운 시선으로 그곳을 둘러볼 무렵,
옆에서 지켜보던 남자녀석 한명이,
갑자기 북 하나를 가져오더니 내 목에 걸어주며 북을 치란다.



...으응??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이미 내 가슴위에 북은 놓여졌고,
주위에는 어느덧 수십, 아니 백여명은 족히 될듯한 사람들이 모두 나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나는 뭔가 그들을 실망시켜서는 안된다는 부담감에,
초딩시절 배웠던 '휘모리 장단', '굿거리 장단', '자진모리 장단'을 차례대로 시전했다.


'덩기덕 쿵 더러러러~'

한 장단이 끝날때마다,
나는 점점 혼이 실린 연주를 시도했고,
그저 한국의 장단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는 사명감 하나만으로 이미 자아도취 상태였다.




내 앞에는 신랑과 신부가 나란히 앉아있었는데,
어찌나 행복해보이던지, 보는 내내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웃음이라는게 얼마나 전염성이 강한지,
나 또한 그들과 함께 웃고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 같다.


그러고보면,
이건 뭐 누가 초대한 것도 아닌데,
나시티 입은 남자 한명이 등에 배낭을 멘 채,
결혼식장에 급 난입하여 16비트 댄스를 추고,
연이어 북 장단까지 쳐대고 있으니..

그들 입장에서는 다소 당황스러울 수도 있었지만,
친절하고 즐겁게 대해주는 모습이 고마울 따름이다.




그렇게 뜬금없는 축하무대가 끝이나고,
북을 다시 돌려주려는데,

이녀석이 뒤에서 어찌나 꽉 조여놨는지,
이게 목에서 잘 빠지지도 않는다.


"악!! 헬프 미!!"

좀 도와달라고 외치는데,
주위 사람들은 장난인줄 알고,
또 다시 한바탕 웃으며 나를 잠시동안 쳐다보고만 있다.


..하아... ㅡ_ㅡ;
도움을 주란 말이다.. 이 아름다운 사람들아.....


덕분에 목이 쓸리는 고통을 참아가며,
결국 혼자 억지로 북을 떨궈냈고,


그렇게 낯선곳에서의 결혼식 참관은 마무리가 되었다.




해가 지기 전까지 다음 마을에 도착해야 했기에,
긴 시간을 있지는 못했지만.

네팔 산간지역의 결혼식은 꽤나 정감있게 느껴졌다.


뭐랄까.
정말 모든 사람들이 즐기고, 축하하는 잔치같은 느낌.
너무 형식적인 것에만 치중하는 것 같은 최근 한국 결혼식 모습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아무튼, 이날 결혼한 네팔 부부가 앞으로도 결혼식날처럼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