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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기/India

인도여행 120 - (홍콩) 비오는 홍콩의 밤


공원을 거닐다가 밖으로 나오니,
벌써 날이 어둑어둑 해지고 있었다.

게다가 중간에 살짝 그쳤던 비마저 슬그머니 다시 내리기 시작하는데,
아무래도 여행의 마지막 날이라는 걸, 하늘에서까지 축하해주는 모양이다.


아주그냥,
비도 쫄딱 맞고 좋네 ^^




이렇듯,
여행의 마지막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고,

우리는 얼마남지 않은 홍콩에서의 시간을,
'침사추이'라는 곳과 '빅토리아 하버'라는 곳에서 마무리 하기로 했다.


그런데,
사실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단지 2가지 때문이었다.



이유 1.
한국에서 어학원을 다닐적에,
어떤 누님으로부터 "홍콩은 침사추이가 짱임!" 이라는 얘기를 들었으며.

이유 2.
네팔에서 트래킹을 할 무렵,
한 홍콩남자가 "홍콩 올꺼면 빅토리아 하버 정도는 구경해줘야지!" 라고 외치는 걸 들었기 때문이다.






오호라....


귀가 거의 비닐봉투 두께정도로 얆았던 나는,
당시 이들의 말을 철썩같이 담아두고 있었고,

마치 나만 알게 된 비밀장소처럼,
'홍콩가면 꼭 한번 가봐야지, ㅋㅋ' 라며 히죽거리곤 했는데,
결국 지금에서야 가볼 수 있게 된 게다.

(뭐, 비밀장소 치곤, 알고 있는 사람이 한 40억명쯤 된다는 게 좀 서글프지만 말이다.)




침사추이에 도착하자,
밖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고,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처음 맞이한 침사추이의 느낌은,
상당히 활기차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복잡해 보였는데,

뭔 놈의 간판이 그렇게 많이 메달려 있는지,
당최 시선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도 모를 정도였다.




"음, 이 느낌은 마치 도쿄랑 비슷하네."

비행기 경유로 딱 하루 일본에 가봤다던 누나는,
'침사추이 분위기'에 대해서 내게 전문가적인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는데,

일본이라곤 쓰시마섬도 가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아~ 그래?" 라는 추임새만 넣어댈 뿐이었다.




뭐, 사실 도쿄랑 비슷하든, 안비슷하든,
나는 이 활발한 길거리가 꽤 마음에 들었다.

길 주변에는 각종 맛있는 먹을거리가 널려있고,
신기한 전자제품과 의류들이 흥미롭게 진열되어 있었다.

이건 마치 흥겨운 '축제'에 온 듯해서,
나는 그저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즐거워졌다.


다만,
우리에게는,
이 '축제'를 야무지게 즐길만한 돈이 없다는 것.

뭐...
그 뿐이었다. ^^




침사추이에서의 Eye Shopping을 슬슬 마쳐갈때쯤,
산발적으로 내리던 빗줄기가 조금씩 굵어지기 시작했다.


"일단 빅토리아 하버로 가보자~"

우리는 비가 더 거세지기 전에,
편의점에서 간단히 치킨 샐러드와 맥주 2캔을 산 뒤, 다음 목적지로 서둘러 움직였는데,


도착해보니 짙은 안개와 소나기로 인해,
이미 빅토리아 하버는 80년대 괴기 영화에나 나올법한 포스를 뿜어대고 있었다.



 

덕분에 항구를 바라보며,
간지나게 맥주를 마시려던 우리들의 소소한 계획이,

실제로는 항구 옆에 있는 계단에서,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음식을 먹는 노숙자의 모습으로 현실화 되고 말았다.




비록 남아있는 돈으로 맥주를 산 탓에,
1회용 우산하나 없이, 비를 몽땅 맞고 있었지만,

무슨 이유때문인지, 기분만은 참 편안했다.


게다가 때마침 항구에서는,
신나는 음악과 특이한 레이저 쇼가 시작되었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심포니 오브 라이트' 라는 레이저 쇼란다.)


짙은 안개와 빗줄기 속에서 펼쳐지는 레이저 쇼.
그리고 그 곳을 지나가는 화려한 유람선 불빛,
마지막으로 내 앞에 놓인 닭가슴살 샐러드와 맥주.


절대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 모든 것들이,
묘하게 겹쳐지며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항구를 바라보며 무심히 맥주를 마시던 나는,
갑자기 눈앞에 이 상황을 생각하다가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고보면,

처음 인도행 비행기를 탔을 때,

내가 2달후에 홍콩에서,
예전에는 알지도 못했던 누나와,
비를 맞으며 맥주를 마시게 될 줄을 누가 알았을까.


거참, 웃기는 일이다.




어쨌거나,
홍콩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밤은 그렇게 저물었고,
이제 내게 남은 것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 뿐이었다.


약간의 아쉬움과 그리움,
그리고 최근 부족했던 잠 때문에 느껴지는 피로감.


인도를 떠날 때와 같이,
지금의 내 마음은 또다시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공항에 도착해서도 이러한 기분은 계속되었고,

나는 마치 운동 경기에서 모든 것을 쏟아낸 선수처럼,
비행기에 타자마자 의자에 힘없이 앉아 창밖의 하늘을 바라봤다.

그리고 창밖으로 보이던 홍콩의 모습이 조금씩 작아질수록,
아쉬움은 점점 더 커져갔다.



"이번에 한국가면, 인도에 다시 여행 올 수 있을까?"


내가 옆에 있던 누나에게 말을 걸자,

누나의 대답은 의외로 꽤 간단했다.



"난 힘들지만, 넌 젊으니까 충분히 가능해."



아....그렇구나.

.
.
.
.


잠깐,


"근데 누나랑 나랑 한살 차이 아냐?"





내 물음에도 한동안 대답이 없던 누나는,
이미 숙면에 접어들은 것처럼 보였고,

잠시 후,
나도 피곤함을 이기지 못한 채,
결국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어쨌거나, 안녕, 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