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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기/India

인도여행 98 - 황금사원


황금사원에 들어가려면 2가지 조건이 있다.

1. 모자나 천으로 머리를 가릴 것.
2. 신발을 벗을 것.

그래서인지 입구 앞에는 친절하게도 신발 보관소와,
모자가 없는 방문객을 위해 손수건 같이 생긴 천도 나눠준다.


뭐, 항상 비니모자를 쓰고 다니던 나로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뜻밖에도 나를 당황스럽게 한 곳은 다름아닌 사원의 입구였다.




사원입구에는,
바닥을 5cm정도의 깊이로 파서 물이 잠시 고이게끔 만든 공간이 있는데,
안으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맨발로 그 곳을 밟고 통과해야 했다.

물론 거기엔 '이곳은 성스러운 곳이니, 더러운 발을 물로 정화하라.' 는,
뭔가 의미있고 심오한 뜻이 담겨있을 거라고 생각되지만,


마치 목욕탕에 온 것 마냥,
내 옆에서 발바닥을 박박 문지르는 인도인을 보고 나니,
나는 그저.. 제자리 멀리뛰기를 해서라도 이곳을 건너뛰고 싶었다.
(심지어 물 색깔도 연한 갈색이라는 게 나를 더 초조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주변에 느껴지는 엄숙한 분위기속에서 점프를 하기엔,
나는 그저 꿈 많은 소시민에 불과했고,
결국 겁 먹은 아이처럼 발가락을 잔뜩 움츠린 채,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내딛을 수 밖에 없었다.




사원에 들어서자마자,
예상외로 상당히 깔끔한 건물과 사람들의 열렬한 종교 행동에 깜짝 놀랐다.

이곳은 기존에 방문했던 여느 인도 관광지처럼,
사라져버린 옛 유물이 아니라, 지금도 뜨겁게 살아있는 종교의 성지였다.


커다란 호수와 건물 여기저기에 달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경전 암송소리,
그리고 그 주변을 메운 많은 사람들.


이쯤되면,
과연 종교의 힘은 어디까지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커다란 호수 중앙에는 그 유명한 황금사원의 본당이 위치하고 있는데,
그곳에 들어가려면 끝없이 이어진 줄을 기다려야만 한다.

속도는 거의 1분에 한 걸음 정도 옮기는 수준이라,
차라리 포복자세로 기어가는게 빠를 정도지만,

이건 어째, 중간에 포기할 수도 없는 것이,
워낙 많은 사람들이 빽빽하게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서, 내가 원한다고 뒤로 빠져나갈 수도 없는 형태다.





고...고립!?


하지만 그것을 눈치챘을 때는 이미 늦었고,

결과적으로 우리는 자의반 타의반,
황금사원의 내부를 아주 차분히 둘러 볼 수 있었다.




어렵사리 들어간 본당 내부에는 대단한 열기가 느껴졌다.
하얀 수염을 길게 기른 풍채 좋은 인도인 한명이 중앙에서 경전을 읽고 있고,
그 주변에는 신도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 앉아서 차분하게 말씀을 듣고 있었다.
(알고보니 사원 전체에 울리던 목소리가 바로 본당 안에서 경전을 읽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진지한 분위기에,
우리는 들어가서 별다른 얘기도 못한 채,
그저 서울와서 빌딩 처음 본 사람들마냥 이리저리 시선을 옮기기 바빴다.


본당 내부는 원칙적으로 사진 촬영이 불가능 한 곳이지만,
만약 사진이 허용된다 한들, 이런 진지한 분위기속에서 쉽게 렌즈를 들이댈 용자는 아마 없을 것 같다.




줄 서는데 30분, 구경하는데 5분이 걸린 본당을 나와,
우리는 한적한 호수 한켠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옆에서는 인도인 한명이 호수에 들어가 몸을 적셔대고 있고,
다른 쪽에서는 사람 팔뚝만한 물고기가 헤엄을 치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은 호숫물에 물고기 밥을 던져대고..
또 조금 더 옆 쪽에는 한 사람이 물 속에서 목만 내놓은 채, 목욕탕에 온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 정말.


정말이지..여기는 말야..


쿨하구나 다들......




한참을 앉아서 사람들 구경을 하다보니,
대걸레로 대리석 바닥을 물청소 하던 사람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비키라고 손짓을 했다.

별수없이 강제이주를 명령받은 우리는,
겸사겸사 다른 곳도 구경하기 위해 사원 뒷쪽으로 걸음을 옮겨보았다.


사원 뒷편에는 꽤 멋스런 양식의 2층 건물이 줄지어 있었는데,
사람들의 왕래가 적은 곳이라 꽤 쾌적함이 느껴진다.

그런데 신기한 점은 마치 호텔 객실처럼 일정한 크기의 방들이 만들어져 있고,
각 방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문이 모두 열려 있다는 것이었다.



"대체 저곳은 뭐지?"




호기심을 참지 못한 나는,
자연스레 그 방을 향해 걸어가 보았다.

그 안에는 놀랍게도,
'배추도사 무도사'에서나 나올법한 수염을 가진 할아버지 한분이,
마치 누군가 들어오기를 하루 종일 기다린 것처럼, 문쪽을 향해 꼼짝없이 앉아 있었다.


그냥 무슨 방인가만 슬쩍 보려고 했던 나도 당황했지만,
뜬금없이 나타난 낯선 동양인 때문에, 그 할아버지도 어지간히 어이가 없는 모양이다.


뭐, 딱히 할말도 없고해서,
대략 20초간 서로의 얼굴만 쳐다봤는데,
얼마나 뻘쭘하고 민망하던지, 마치 영겁의 시간을 함께 보낸 것만 같았고,


뭔가 들어오면 안될 곳을 온 것 같은 느낌에,
그에게 한마디 인사만 내뱉고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다.


"I'm from Japan!"




밖으로 나와서 한동안 다시 호수를 바라보니, 조금씩 배가 출출하다고 느껴졌고,
우리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기에 사원에서 무료로 운영한다는 식당을 찾아가 보았다.


무료식당은 사실 특별한 점은 없었다.
커다란 강당안에 급식판을 들고, 바닥에 열을 맞춰 앉으면,
봉사자들이 와서 반찬을 하나씩 얹어주고 가는 식이다.

반찬이야 뭐,
짜빠티와 커리, 그리고 엄청나게 단 Sweet을 줬는데, 대체적으로 맛있다.
(사실 상한거 빼곤 다 맛있어 하는 식성이니... 게다가 공짜니까..두말할 나위가 없...)


하지만 개인적으로 너무 단 음식을 싫어해서, Sweet만은 좀 남기고 싶었는데,
주변 분위기가 왠지 '뭐? 이 아까운 음식을 남기겠다고?' 라고 할 것 같은 느낌인지라..

억지로 달디 단 Sweet을 꾸역꾸역 입어 밀어넣고 나서야, 식판을 깨끗이 비워냈고,
마치 립밤을 바른 것마냥 윤기나는 입술도 덤으로 얻게 되었다.



하..
이러다가 이거 입에 개미 꼬이는 거 아닌가 몰라 ^_^




다시 돌아온 황금사원 중앙부에는,
여전히 본당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빼곡히 서 있었다.


그러고보면 종교라는 건 참 대단하다.
굳이 시크교에만 이런 생각을 가지는 건 아니다.

사실 이곳에서의 모든 느낌이,
한국에 있는 기도원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는 것에서부터, 사람들의 열광적인 종교활동.
비록 구체적인 교리와 이름은 다르지만 풍겨지는 느낌은 별반 다르지 않다.


굳이 꼽아보자면,
이곳에는 황금으로 만든 사원이 있고 너무나도 단 Sweet을 준다는 거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