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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기/India

인도여행 97 - 암리차르 입성


누가 음식에 수면제를 탄건지,
내게 동면의 시간이 찾아온 건지,
한참 동안 쥐 죽은듯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떴다.

그런데 눈을 뜨는 순간,
앞에서 누나가 갑자기 '흠칫'거리며,
내 얼굴에 조준하고 있던 카메라를 황급히 치웠는데,
나는 직감적으로 내가 자는 얼굴을 찍고 있었다는 것을 눈치챘다.


이러면 내가 또 질 수 없지...

꼭 이럴때만 발휘되던 내 승부욕은,
한동안 서로 상대방의 초췌한 얼굴을 사정없이 찍어대는 상황을 만들어 주었고,

'찰칵, 찰칵' 거리는 셔터소리와 함께,
가뜩이나 용량이 부족한 카메라 메모리에 서로의 초췌한 얼굴만 쌓여갔다.


이건 무슨 '누가 누가 더 추하나' 콘테스트마냥,
점점 그 열기가 고조되어 갔는데,


나는 그때 고개를 돌리다가,
옆에서 우리를 지켜보던 인도여인의 표정을 우연히 캐취할 수 있었다.




'쯔쯔...'

비록 이야기를 하진 않았지만,
그녀의 표정은 내게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고,


결국 나는 영문을 모르는 누나를 내비둔 채,

조심스럽게 카메라 렌즈를 닫고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턱을 괴고, 그저 조용히 창문만 바라보기 시작했다.




열차가 암리차르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아! 드디어 암리차르구나 ^_^'

사실 인도에 처음 도착했을 때만해도,
나는 '암리차르'라는 곳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이곳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여행 도중에 봤던 인도 영화에서,
암리차르의 '황금사원'이 배경으로 나왔기에 일단 호기심이 생겼고,
암베르에서 우연히 만난 시크교 사람이 '황금사원'을 강력 추천했었기에 한번쯤 들려보리라 생각만 했었다.


그러던 중,
황금사원에서는 누구에게나
무료로 뜨거운 샤워는 물론이고, 식사와 잠자리까지 제공해준다는 정보를 접한 이후로,

나는 당초 바라나시에서 곧장 '맥그로즈 간즈'로 가려던 계획을 전면 수정하고,
'암리차르'행 기차를 급 예약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정보가 정말로 사실인지'를 알아보기 위한,
일종에 '진실에 대한 탐구심과 호기심'일 뿐이었다. (정말?)




우리는 기차역에서 싸이클 릭샤를 타고 단숨에 황금사원으로 향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황금사원에서 제공한다는 '숙소'로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_-;


건물은 예상보다 상당히 컸는데,
그 곳에 있던 수많은 방들은 현지 순례자들을 위해 무료로 운영되고 있었고,
외국 여행자들에게는 특별히 초등학교 교실만한 크기의 공간이, 몇개의 방과 도미토리로 나뉘어 제공되고 있었다.



"와, 여기 생각보다 괜찮은데?"


"...."

옆에 있던 누나는 대꾸도 하지 않고,
고개만 살짝 끄덕이며 계속 주변을 두리번 거리기 시작했는데,

잠시후 숙소 안쪽에 위치한 샤워실을 포착하자마자,
곧바로 짐을 내려놓고 달려가, 핫샤워를 하기 시작했다.




역시 프로다워.. ^^

먼저 샤워할 타이밍을 놓친 나는,
도미토리 침대에 앉아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때마침 숙소 담당자로 보이는 시크교인이 내게 다가와 노트를 하나 건네줬다.


이름과 국적, 여권번호, 도착일과 출발예정일이 적힌 것으로 보아,
일종의 '체크인' 하라는 노트였는데,

호기심에 뒤로 몇 페이지를 넘겨보니,
정말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했던 흔적이 보였다.


나는 혹시나 아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익숙한 이름을 찾아봤지만, 역시나 그런 영화같은 스토리는 내게 일어나지 않았고,

막연한 기대감은 이제 그만 마음속에 접어둔 채,
여느 사람들처럼 이름과 국적, 여권번호를 노트에 꼼꼼하게 적으며, 26년간의 악필 솜씨를 수줍게 선보였다.





그리고 물론,
바로 밑에 칸에는 죄다  표시를 함으로써,
뒤이어 적게 될 누나의 수고를 덜어주는 일도 잊지 않았다. ^_^
(나중에 알고보니 여권번호 적는란에도 〃 표시를 해서 좀 말썽이 되기도 했지만...)

뭐, 이런걸로 나를 내쫓진 않겠지.....




어쨌거나,

이제 황금사원에 직접 들어가보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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