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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기/India

인도여행 95 - 회의감


바라나시로 가는 동안,
버스는 중간에 1~2번 정도 이름도 모르는 도시에 정차하며 휴식을 가졌다.

우리가 앉은 좌석은 기다란 3인용 의자라,
창가쪽엔 누나가 앉고, 중간은 내가, 통로쪽은 어떤 인도남자가 앉았다.



그런데 새벽 시간이 되면서,
내 옆에 앉은 인도인이 자신의 어깨로 내 어깨를 기분나쁘게 밀치기 시작했는데,

인상을 쓰며 어깨를 탁탁 밀치는 뉘앙스로 보아,
'자리 좀 독차지 하지마!' 혹은 '나한테 기대지 좀 마!' 라는 뜻인 것 같았다.


하지만 분명히 내가 '쩍벌남' 처럼 다리를 벌리고 앉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그에게 머리를 기댄 기억도 없었지만,


'아.. 나도 모르게 잠 들면서 녀석에게 머리를 기댔었나?'

하는 생각에 한동안은 일부러 잠도 자지않고, 자세에 신경을 쓰며 창밖만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동안 시간이 지나자,
어느새 옆에 있던 녀석은 코를 골며 잠에 빠져들었고,
잠든지 몇 분 되지도 않아, 슬며시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기 시작했다.


'아니, 뭐야 이거..'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대꾸하기조차 귀찮았던 나는 가만히 앉아 황당한 표정만 짓고 있었는데,


어느순간 녀석이 잠에서 깨더니,
갑자기 내게 화를 내며 아까처럼 어깨를 거세게 밀쳐댔다.



'뭐야., 방귀뀐 놈이 성낸다더니..'


뭐, 한두번 쯤이야,
그저 "T.I.I." (This is india)[각주:1] 라고 말한 뒤 잊어버리면 그만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녀석의 짜증스런 터치는 도를 넘어섰다.

게다가 더욱 이해할 수 없었던 건,
목적지에 거의 다다르면서 사람들이 대부분 내렸고,
그로 인해 버스 앞쪽에 1인용 의자가 많이 비었음에도,
굳이 3명이 앉는 우리 좌석에 앉아서, 함께 부대끼며 짜증을 내고 있는 것이었다.


가뜩이나 몸도 피곤하고,
소나울리에서 만난 양아치들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는데,
이건 무슨 버스에서 겨우 잠들려고 하면 어깨로 툭툭 쳐대니..

성인(聖人)이 아닌, 단지 성인(成人)이었던 나로서는,
어이없음을 넘어서서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쪽이 나한테 기대고 있어요! 그리고 정 불편하면 앞쪽에 자리 많으니까, 그쪽 가서 앉으세요!"

녀석에게 되지도 않는 영어로 몇 번이나 말을 해봤지만,
힌디어밖에 할 줄 모르는 녀석과는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았고,

그 후로도 녀석은 10분에 한번꼴로 자신의 어깨로 나를 밀쳐내며 짜증을 냈다.



아... 이 녀석이 나를 'Water'로 보는구나.


결국 나는 참다못해,
그의 멱살을 단단히 잡은채, 힌디어로 '짤로!'(=Go) 를 외치며 앞쪽좌석을 가리켰다.


그리고,
마치 정지된 몇 장의 사진들처럼,

내 손에 의해 녀석의 짐은 버스 앞쪽으로 내던져 졌으며,
창가에서 잠자던 일행은 비몽사몽간에 나와 그 녀석을 말려댔고,
허공에서는 주먹이 몇 번 오가는 소동끝에,

결국 그 인도인은 다른 좌석으로 가서 앉게 되었다.




그 녀석이 사라지자,
일단 상황은 마무리 되었지만,
내 기분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어깨로 나를 쳐대던 녀석이나,
거기에 신경질적으로 대한 나나, 다를것이 없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좀 더 현명한 방법은 없었을까.



나는 그저,
즐겁게 여행을 하고 싶었는데..


왜 이런 트러블을 겪고있지?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짓을 하고 있는 거지?


이 순간..
나는 여행이고 뭐고,

모든 걸 그만두고 싶었다.




모든게 지긋지긋 했다.
친근하고 즐겁게만 생각했던 인도의 모습이 낯설게 다가왔다.

지금까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농담을 하며 쿨하게 웃어 넘길 수 있었지만, 지금의 나는 그런 여유조차 없었다.


버스는 여전히 어둠을 가르며 바라나시로 달리고 있고,
옆에는 여전히 누나가 산송장 상태로 잠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다.



오늘따라 내겐 하루가 너무나 길다.



 

  1. 바라나시에서 만난 'Mark'는 인도를 여행하면서 황당한 일이 벌어지면 웃으면서 "T. I. I." (그래..여긴 인도니까..) 라고 말하곤 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