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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기/India

인도여행 94 - 소나울리의 양아치들


샨티 스투파를 다녀오고 다음날 아침,

생각같아서는 네팔에 더 머물고도 싶었지만,
우리는 다시 인도로 돌아가기로 결정했고, (어차피 네팔 비자도 만료가 되었..-_-;)

소나울리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새벽부터 부랴부랴 짐을 챙겨서 오전 6시쯤 숙소를 나왔다.


누나는 아침부터 몸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다고 하더니,
결국 버스에 올라탄 이후로 그저 멍하니 '산송장' 모드에 들어갔다.


나는 홀로 창밖의 풍경을 바라봤는데,
버스의 창문이 완전히 닫히질 않아서 찬바람이 고스란히 들어오는게 신경이 쓰였다.
아마도 내가 잠들어서 바깥의 아름다운 풍경을 못 볼까봐 일부러 이딴 식으로 만들어 놓은건가^^?


아무튼 꽤 배려돋는 창문 구조였다.




그렇게 찬바람과 함께 7~8시간을 보내고 나자,
버스는 오후 3시쯤, 소나울리에 도착했다.


나는 출국 도장을 받기 위해 네팔쪽 출입국사무소에 들어섰는데, 
동시에 20여명 정도에 한국인들이 단체로 네팔입국을 위해 사무소로 들어왔다.

주로 10대 아이들과 20대 초반의 사람들로,
그 중 인솔자인 듯한 사람은 분주하게 다른 사람들의 여권을 모으고 있었다.


나는 네팔을 떠나고 있는데,
그들은 이제 막 네팔에 들어오고 있다.
이 녀석들은 네팔에서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미소가 지어졌다.


아마 여행 초기의 나였다면 그들에게 반갑다며 말을 걸었을 테지만,
나는 나대로 좀 피곤한 상태였고, 그들 역시 초췌한 나와 '산송장' 상태인 누나를 그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볼 뿐,
서로 이야기를 나누진 않았다.




국경을 넘어 인도로 넘어오자,
요란한 자동차 경적소리가 들리고, 지저분한 길거리가 눈에 띄였다.


아... 여전하구만.. 이 동네~


비록 장시간 버스를 타고 오느라 몸은 피곤했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설레임과 반가움이 느껴졌고,
나는 곧바로 바라나시로 가기 위해 '산송장'과 함께 버스정류장으로 들어섰다.




일단, 아직까지 상태 메롱인 누나를 버스정류장에 앉혀두고,
표를 구하기 위해 주변을 어슬렁 거리는데,
때마침 키작은 인도 녀석이 바라나시행 버스표를 구해주겠다며 내게 다가왔다.

그는 나를 근처에 웬 티켓판매소 같은 곳으로 안내하더니,
대략 300루피 정도의 가격으로 티켓을 끊어주겠단다.


하지만..
뭐, 이젠 척하면 척.
대충 봐도 사기의 냄새가 났다.


나는 그냥 없던일로 하자며 정중히 사양하고 문을 나섰고,
그 녀석은 "그럼 250루피?" 라고 다급히 나를 막아세웠지만,
나는 들은체 만체하며 다시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어갔다.




어차피 소나울리의 버스 정류장은 한 곳밖에 없기 때문에,
나와 누나는 다시 정류장 의자에 앉아,
바라나시로 가는 버스를 무작정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런데 한 5분쯤 흘렀을까.
아까 나에게 버스표로 사기치려던 키작은 녀석이,
덩치 좋은 인도녀석과 함께 내 앞에 다시 나타났다.


"여긴 우리 비지니스 구역이니까, 표 안살꺼면 나가."

.
.
.
.

이건 또 뭔 개소리인가.

여긴 공영 버스 정류장인데, 뭘 니들 맘대로 ...


아니, 우리 옆에 다른 인도인 2명도 버젓이 앉아있는데,
우리에게만 이러는 건 또 뭔가?


"여기가 니들 땅이냐? 옆에 다른 사람들도 가만히 앉아있는데 뭔 개소리여?"

내가 한마디 하자,
그 녀석들은 갑자기 옆 자리에 있던 인도인들에게 발길질을 해대며 그들을 내쫓았고,

다시 우리에게 태연히 다가와 말했다.


"쟤네도 나갔으니까, 이제 너희도 나가."




사진출처 : http://pds.joinsmsn.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0801/htm_2008011011501340004010-001.JPG

아오, 뭐 이런 양아치들이..

"싫다면?"

내가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나며. 녀석에게 대꾸하자,


덩치 좋은 녀석이 내 얼굴 앞에 주먹을 들이대며,

"Do you want to fight me?" 라고 되물었다.



순간...

뇌 안에서 '투두둑-' 소리와 함께 내 인내심의 끈이 너덜너덜해졌고,
한편으론 이 썩을럼의 시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나름 '참을 인(忍)'을 떠올려가며 애를 썼다.


그렇게 그 녀석과 나는 서로 모국어로 욕설을 날리며, 옥신각신 밀쳐대기를 해댔고,
옆에서는 여전히 상태 안좋은 누나가 그냥 나가자며 나를 말려댔다.


'아.. 기껏 여행와서 이런 녀석이랑 엮이는 것도 참..'

한동안 소란이 일어난 뒤,
더이상 실랑이를 해봤자 소득이 없을 것 같아,
결국 녀석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곤 정류장을 나섰다.




낯선 타국에서 문제를 일으키는게 내키지 않아서 일단 나왔지만,
이 녀석들은 오히려 여행자들의 이런 습성을 악용하는 것 같아 더 화가 났다.


어쨌거나,
끓어오르는 화를 진정시키며 다시 소나울리 골목길로 나왔고,
다시 버스표도 알아볼 겸, 먹을 것도 살 겸, 잠시 과일가게에 들렸다.

과일가게 할아버지에게 방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자,

"뭐? 거기 버스표를 따로 사는게 아니라, 출발할 때 버스안에서 차장이 직접 돈을 걷어!"


마치 자기일처럼 흥분하신 아저씨는 가게도 비워둔 채,
직접 나와 누나를 데리고 버스 정류장까지 가서 정차되어 있던 바라나시행 로컬버스까지 안내해주고,
정확한 버스 요금까지 알려줬다.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실제 요금은 '100루피 후반대 or 200루피 초반대' 였다.)



결국 친절한 과일가게 아저씨 덕분에 우리는 버스에 손쉽게 탈 수 있었지만,
기분은 아직도 석연치 않다.

그 녀석들의 어이없는 시비는 둘째치고,
이런 기분나쁜 소란때문에 괜히 몸도 좋지 않은 일행이 더 고생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버스 창밖을 바라보며 기분을 추스리려 애를 썼다,

그런데 그때 우연히 창밖으로 중국 여자 여행자 2명이 우리 버스를 향해 걸어오고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아까 나와 시비가 붙었던 인도인이 어디선가 나타나 그 여자들에게 말을 걸며 다른 곳으로 데려가는 걸 보았다.


'아, 저 녀석 또 저러네..'





잠시후,
아까봤던 중국 여자 일행들도 우리가 탄 버스에 올라탔고,
시간이 지나면서 버스 출발시간은 다가왔다.


그런데 버스가 출발하기 직전,
갑자기 아까 그 키작은 양아치 인도녀석이 버스에 불현듯 올라타더니,
중국 여자들에게 다가가 큰 소리로 다그치며 말을 걸었다.


나는 뒷자석에 앉아있던터라,
자세한 대화 내용은 듣지 못했지만,

중국 여자애 한명이 거의 울부짖으며 "아까 돈 냈잖아요!" 라고 하는 걸로 봐서는,
아무래도 이 망할 양아치같은 녀석이 돈을 더 내놓으라고 하는 것 같다.


버스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음에도,
이 녀석은 중국 여자들을 상대로 계속 돈을 뜯으려 했고,
나는 보다못해 그 녀석에게 버스에서 당장 내리라고 소리쳤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녀석은 힌디어로 몇마디(아마도 욕이겠지)를 내던졌고,
나는 그에게 다시금 가운데 손가락을 선물해 주었다.




중국 아이들에게 돈을 더 받은건지,
아니면 그냥 포기해버린 건지,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 녀석이 바로 버스에서 내리면서 소란은 끝이났다.


거참,
나름대로 인도 여행을 하면서,
사기치는 녀석들은 많이 봐왔지만,
이렇게 대놓고 집적거리는 양아치 녀석들은 또 처음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는,
이런 상황을 보면서도 시종일관 아무말도 않고.
가만히 앉아만 있던 주변 인도인들을 보면서 그들의 무관심에 치를 떨었다.



어느덧 시간은 한밤중이 되어,
옆 자리에는 아직도 상태 메롱인 누나가 조용히 잠에 빠져들었고,
창 밖에는 어둠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이런저런 생각으로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