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가기/India

인도여행 93 - (네팔) 효율적인 여행


트래킹이 끝난 후,
우리는 피로를 풀기 위해,
은퇴 후 실버타운에 입성한 사람들처럼 맘껏 요양을 즐겼다.

하루는 한 손에 비둘기 모이 봉지, 다른 한 손에는 우리가 먹을 오렌지를 쥔 채,
작은 나무 보트를 타고 호수 한 가운데에 섬처럼 위치한 '바라히 사원'을 들렸다.


물론 뭔가 굉장한 것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달랑 조그마한 건물 하나 밖에 없는 바라히 사원은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뭔가 부족했다.
아마 그동안 인도와 네팔을 거치며 웬만한 사원이란 사원은 질리도록 봤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는 별 수 없이 그저 계단 위에 앉아 하염없이 호수를 바라보며,
계단 주위로 날아드는 비둘기들에게 먹이주는 일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하지만 녀석들의 식성을 만족시켜주기엔,
먹이가 턱없이 모자랐고,

한없이 흩뿌려대던 먹이가 동이나자,
곧 손을 툭툭 털어내고, 다른 소일거리를 찾아 일어서야만 했다.


자... 이제 뭘 한다?..


"우리 '사랑고트'나 가볼래? 아니면 '샨티 스투파'?"

옆에서 가이드북을 뒤적거리던 누나는 갑자기 다른 곳을 가보자고 했는데,

순간적으로 내 머리속에서는 가상의 지도가 펼쳐지며,
두 장소의 지리학적 데이터가 맴돌기 시작했다.




"그냥 샨티 스투파로 가자.. -_-;"


사실 트래킹을 마친지 얼마 되지 않은 나로서는,
어떤 곳의 풍경이 더 좋다거나, 볼거리가 더 많다거나 하는 것들은 이미 중요치 않았다.

그저 내가 있는 곳에서 얼마나 가깝느냐, 혹은 평지냐 산지냐.. 그뿐이다.



사진출처 : http://www.panoramio.com/photo/26087611

그런점에서 봤을때,
호숫가에 서서 산 쪽을 쳐다보면,
바로 눈에 띄는 곳에 위치한 샨티 스투파는 참으로 '바람직한 곳'이었다.


결국 우리는 샨티 스투파로 가기로 정하고,
간단한 나들이 떠나듯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샨티 스투파를 향해 출발했다.




샨티 스투파로 가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역시 가장 빠르고 편한 방법은 보트를 타고 호수 건너편으로 질러 가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보트를 타려고 호숫가로 가보니, 가격이 예상외로 비쌌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를 건너는데,
자그마치 250~300루피.


이 돈이면 차라리 스테이크를 한번 더 사먹을 수 있겠어!




나의 이 쓰잘떼기 없는 스테이크 예찬론은,
결국 샨티 스투파까지 걸어가기로 결심하게끔 만들었고,
누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하기야 어차피 조금 걷다보면,
호수 건너편으로 이어주는 다리가 나오리라 믿었기 때문에,
그리 부담되는 거리도 아니다.


그리고 좀 내려가다 보면,
아주 싸게 보트를 태워줄 사람을 만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한참을 걸어가도,
다리가 나올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호수위에 보트꾼들은 열대우림의 악어처럼,
우리가 걷기를 포기하고 배에 타기만을 노리며, 호시탐탐 주변을 어슬렁 거렸다.


'..여기서 포기하면 안돼... 여기까지 와서 타면 지는거다..'

그깟 300루피가 뭐길래,
몹쓸 자존심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고,
나는 다리가 나올때까지 끝없이 걸음을 옮겼다.



사진출처 : http://commondatastorage.googleapis.com/static.panoramio.com/photos/original/17719899.jpg

지금까지 온 거리의 2배 정도를 더 걸어가니,
마침내 건너편으로 갈 수 있는 작은 다리가 나왔다.


"좋아!! 거의 다 왔어!! 우린 해냈어!!"

다리밑에는 강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물줄기가 졸졸 흐르고 있었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기쁨의 환호성을 내지르며 다리를 건넜다.




하지만 그 땐 잘 몰랐다.

그게 엄청난 산행의 시작 지점일 줄은 정말이지 몰랐다.


조금씩 거칠어지고 경사가 심해지는 길을 걷게 되면서,
그제서야 나는 슬리퍼를 신고 온 게 '판단 착오' 였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심지어 누나는 긴 치마를 입고 갔다.)




동네 마실 나가는 기분으로 출발했던 우리는,
조금씩 등산이 되어가는 느낌을 받았지만,

트래킹 할 때에 감각을 되살려가며,
신속하게 샨티 스투파로 걸어올라갔다.




"드디어 왔다!!"

대략 1시간 동안,
'미끄러지기, 고꾸라지기, 어설프게 넘어지기' 등등...
산에서 슬리퍼로 할 수 있는 온갖 추한 모습을 선보이고 나자,
나는 산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정상에 위치한 샨티 스투파는,
정말 샨티 스투파처럼 생겼다.

정말이지..
딱 산 아래에서 봤을 때와 똑같았다.



굳이 올라와서 볼 필요가 없었잖아... ^_^?





약간의 허무함 속에서,
나는 시선을 반대편으로 돌렸는데,

산 아래로는,
우리가 머물고 있는 숙소 주변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마치 비행기를 타고 창밖을 내려다 보는 느낌.
샨티 스투파에 온 보람이 조금씩 느껴지는 순간이다.


"누나 이것봐! 굉장한데?"




불러도 이렇다 할 대답이 없던 누나는,
이미 한 쪽에 자리를 잡고 여기저기 사진 찍기에 바빴다.


후.. 역시...

내가 또 아마추어처럼 굴었구나...




사실 샨티 스투파 자체는 별 다른 볼거리가 되지 않았지만,
그저 높은 곳에서 포카라 시내를 바라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게다가 다른 곳과는 달리,
담당자가 상주하고 있어서 건물 주변이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는 점도 좋았다.




어쨌거나,
잠시동안 먼 하늘을 바라보며 가졌던 허세타임도 끝이 나고,

이제 남은 문제는,
왔던 길을 되짚어서 숙소로 돌아가는 일이었다.


생각같아서는 차라리 샨티 스투파에서 드러누워,
어린애마냥 "안돼! 나 안가! 못가!" 를 외쳐대고 싶었지만,
그렇게 죽어라 아낀 300루피로 먹으려 했던 스테이크를 위해서라도,
해 지기 전에는 이곳에서 출발해야 했다.




아, 참 효율적인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