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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기/India

인도여행 91 - (네팔) 트래킹 이후의 생활


트래킹에서 돌아온 후,
넘쳐나는 빨랫감은 내 심신을 지치게 했다.

일행들은 돌아가면서 숙소옆에 있는 수돗가에서 빨래를 했는데,
이건 무슨 '도비왈라'도 아니고, 반나절 동안 빨래만 하다보면,
대체 여행을 하러 온건지, 빨래를 하러 온건지 정체성의 혼란을 겪곤 했다.


사실 여행 초기에는 빨래비누를 하나사서 일일이 손으로 박박 문지르곤 했는데,
여행을 다니면서 가루비누의 위대함을 발견하게 됐고,

그 후로는 그저 커다란 통에 빨랫감과 가루비누를 탄 물만 넣은 뒤,
나는 그 위에서 발로 신나게 탭댄스만 몇번 추면 끝이었다.






마치 신대륙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내 눈은 금세 촉촉해져 반짝거렸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기쁜 소식을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대단한 것이라 믿었던 걸까?

'이미 다른 여행자들도 죄다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하는 데에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저녁이 되자,
트래킹을 같이 갔다 온 일행들이 내방에 모여들었다.
예전에 바라나시에서 얻은 고스톱을 써먹을 때가 온 게다.

우리는 고스톱 제작사의 이름을 따서 일명 '무지개 하우스'를 열었고, 다음날 아침 식사를 내기조건으로 걸었다.


이미 푸쉬카르에서 막판 극적인 역전승으로 1전 1승의 기록을 보유한 나로서는,
게임전부터 다른 사람들에게 "감사히 먹겠습니다^^" 라는 망발을 내뱉을 정도로 자신감에 차있었는데,
실제로도 운좋게 초반에 많은 점수를 따며 게임 내내 상위권을 유지했다.







그런데 그렇게 한동안 잘 나가던 게임판은,
포카라의 정전사태로 위기를 맞이했다.

사실 네팔은 전기 사정이 상당히 열악해서 수시로 정전되기 일쑤였고,
이 때문에 저녁마다 게스트하우스에선 양초를 나눠주는데,
그렇게 나눠 받은 양초도 다 써버린 채 정전이 되어버린게다.


갑작스런 암흑속에서,
우리는 서둘러 손전등을 켜보았지만,
방안 전체를 밝혀주기엔 턱없이 모자랐고,
우리들의 '무지개 하우스'는 이제 그만 영업을 마무리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로 접어들었다.



"아.. 이거 아쉽네.."

나는 흐믓한 미소와 함께 아쉬운 듯 말을 꺼냈고,
이대로 1위를 굳히며 게임을 끌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잠깐!"

그 순간, 한 남자 녀석이 뜬금없이 손전등을 꺼내들고 일어섰는데,






그 녀석은 순식간에 천장위에 빨래줄을 길게 연결한 뒤,
손전등 2개를 연이어 빨래줄에 걸었다.
그리고 손전등을 켜자, 이건 마치 오징어잡이 배처럼 방안을 환하게 비춰줬다.


...이 녀석..
창의력은 그런 곳에 쓰라고 있는 게 아니라고...-_-


어쨌거나,
녀석의 맥가이버같은 몸놀림으로 '무지개 하우스'에 불빛이 들어오자,
주위에선 환호성이 터졌고, 그렇게 게임은 계속 이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음날 일행들의 아침식사를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