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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기/India

인도여행 119 - (홍콩) 걷고 또 걷고


근처에 있다던 기념관은,
직접 도착해보니 예상보다 규모가 좀 작았다.


정문을 슬쩍 쳐다보자,
Dr.Sun yat sen 이라는 사람의 이름이 써 있었는데,

Sun으로 시작하는 이름이라곤,
그저 '선동렬' 밖에 모르던 나로서는,
이건 또 무슨 듣보잡 기념관인가 싶을 뿐이었다.


"에이, 뭐야..."

가뜩이나 주머니 사정이 빈약한 나는,
연신 머리속으로 '이곳의 입장료'와 '저녁에 먹을 밥값' 과의 상관관계에 대해 주판을 튕기기 시작했고,

결국 몇 초간에 짧은 고뇌 끝에,
'이런 듣보잡 기념관을 가느니, 차라리 저녁에 좀 더 맛있는 음식을 먹겠다.' 는 쪽으로 생각을 굳히고야 말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이 기념관은 그 유명한 '쑨원'의 기념관이었는 사실 ^_^)




어쨌거나,
우리는 다시 뚜벅이마냥,
홍콩의 거리를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사실 몸은 꽤 피곤했지만,
뭔가 낯선 곳을 걷고 있다는 느낌 때문인지 기분은 상당히 설레였고,

이런 즐거운 기분은 나로 하여금,
뻔히 우중충한 날씨임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날씨 참 좋죠?"

라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안부인사'까지 시도하게 만들어 주곤 했다.



그러고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분명히 장소는 홍콩인데,
우리가 여행하는 방식은 인도를 다닐때와 비슷하니 말이다.


그 사이,
습관이 되어버린건가?




도로를 따라 한참을 걷자,
한눈에 보기에도 꽤 간지나는 공원이 나왔다.

하루 종일 빌딜 숲속을 헤메던 우리는,
간만에 발견한 공원이 그리도 반가울 수가 없었는데,

이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계단을 따라 공원안으로 걸어 올라가 보았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우리는 마치 공원 전체를 전세낸 것처럼 차분하게 둘러볼 수 있었다.


다만,
피곤에 찌든 기색이 역력한 누나의 몸상태가 조금 걱정이 됐는데,

갈수록 말수가 적어지는 누나를 보면,
가끔은 내가 '사람'과 여행을 하는지, '산송장'과 여행을 하는지도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데...

누나가 보는 내 모습도 그리 다르진 않겠지?

하아... ^_^;




폐인이 되어있을 내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문득 내 발을 내려다 봤는데,

살 때는 분명 흰색이었던 컨버스 운동화는,
이미 본연의 색을 잃어버린 채 옆구리가 터진지 오래되었고,

입다가 버릴 심산으로 가져왔던 낡은 카고바지는,
어느덧 버릴 타이밍을 놓친 채 나와 여행의 마지막을 함께하고 있었다.


비록 나는 느끼지 못했지만,
내가 겪어왔던 시간의 흔적들을,
옷과 신발들은 꾸준히 기억하고 있었던 게다.




'이제 정말 돌아갈 시간이긴 시간인가 보구나.'

나는 그제서야,
여행을 하면서 잠시 잊고 지냈던 한국의 일들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비록 지루한 일상에서,
탈출하듯 떠났던 여행이었지만,

막상 여행의 끝머리가 다가오자,
그 어느때보다 한국의 소식들이 궁금해진 것이다.




거참, 사람의 마음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