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여행 91 - (네팔) 트래킹 이후의 생활
트래킹에서 돌아온 후, 넘쳐나는 빨랫감은 내 심신을 지치게 했다. 일행들은 돌아가면서 숙소옆에 있는 수돗가에서 빨래를 했는데, 이건 무슨 '도비왈라'도 아니고, 반나절 동안 빨래만 하다보면, 대체 여행을 하러 온건지, 빨래를 하러 온건지 정체성의 혼란을 겪곤 했다. 사실 여행 초기에는 빨래비누를 하나사서 일일이 손으로 박박 문지르곤 했는데, 여행을 다니면서 가루비누의 위대함을 발견하게 됐고, 그 후로는 그저 커다란 통에 빨랫감과 가루비누를 탄 물만 넣은 뒤, 나는 그 위에서 발로 신나게 탭댄스만 몇번 추면 끝이었다. 마치 신대륙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내 눈은 금세 촉촉해져 반짝거렸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기쁜 소식을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대단한 것이라 믿었던 걸까? '이미 다른 여행자들도 죄다 ..
인도여행 88 - (네팔) 엇갈림
결혼식장을 벗어나 다시 한참을 걷고 있자니, 뒤에 쳐져서 걷고 있던 남자일행 2명은, 이젠 대체 어디쯤 있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어차피 길은 하나니까.. 언젠가는 만나겠지.. 그래, 지구는 둥그니까.' 누나와 나는 그냥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그저 묵묵히 앞을 향해 걸었다. (절대 그들을 기다리는게 귀찮아서 그런게 아니다.) 그렇게 긍정적 걷기를 계속 하다보니, 어느 순간, 길 옆에 아주 조그맣게 'Check point' 라는 글씨가 보였다. 말 그대로 트래킹을 하다가 중간에 관리인에게, '우리 지금 이쯤 지나가고 있습니다요~' 라며 체크하고 가라는 곳인데, 솔직히 그냥 통과해도 별 문제 없어 보일만큼 허름하고, 허술하고, 허전해 보였다. 하지만 누군가 방문해 주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관리인을 위해, ..
인도여행 87 - (네팔) 결혼식
한참을 '아이 좋아라~*' 하며 걷던 우리는, 문득 한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중간 중간에 숙소나 집들이 있긴 있는데, 당최 사람들이 보이질 않는 것이다. 차라리 그냥 오래된 집들이면 모르겠지만, 마치 조금 전까지 사람들이 머물렀던 것처럼, 빨래들이 줄에 걸려있고, 집 대문이 안 잠긴 곳도 많았다. 이거 뭐야 대체 -_-? SF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인지, 나는 조금씩 '하지 않아도 될 상상'을 하기 시작했고, 잠시 뒤, 지붕이 불타버린 집을 지날 무렵엔, 내 머리속에서 쓰여지던 한편의 소설은 점점 막장 스토리를 더해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집단으로 UFO에 납치라도 됐든 말든, 사람들의 존재는 '아웃 오브 안중' 이 되어갔고, 나중에는 오히려 아무도 없는 음식점 마당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는 대담..
인도여행 86 - (네팔) 길을 걸으며
푼힐 전망대에서 내려온 후, 고라빠니의 숙소로 돌아왔다. 다들 약속이나 한듯이 1층 난로에 모여,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손을 녹인 후, 뒤이어 밥 먹을 준비를 했다. 메뉴는 역시나 미리 준비해 간 라면. 숙소 주인장에게 뜨거운 물만 필요하다고 하자, 그는 내심 우리가 뭔가 음식을 따로 주문할 걸 기대하고 있었는지, 표정이 그리 밝아보이지는 않았다. 물론 우리도 트래킹 내내 라면을 먹어대서, 지긋지긋 해질 무렵이었지만, 빈곤한 여행자였던 우리에게 숙소 음식 가격은 너무 비쌌다. 어쨌거나 나는 주인장을 따라 주방에 들어가 신나게 라면을 끓였고, 그날 아침도 일행들과 함께 어쩔수 없는 '면식수행'을 했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짐을 챙겨서 곧바로 다음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한 손에는 카메라를 쥐고, 다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