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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기/India

인도여행 86 - (네팔) 길을 걸으며


푼힐 전망대에서 내려온 후,
고라빠니의 숙소로 돌아왔다.

다들 약속이나 한듯이 1층 난로에 모여,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손을 녹인 후, 뒤이어 밥 먹을 준비를 했다.


메뉴는 역시나 미리 준비해 간 라면.
숙소 주인장에게 뜨거운 물만 필요하다고 하자,
그는 내심 우리가 뭔가 음식을 따로 주문할 걸 기대하고 있었는지, 표정이 그리 밝아보이지는 않았다.




물론 우리도 트래킹 내내 라면을 먹어대서, 지긋지긋 해질 무렵이었지만,
빈곤한 여행자였던 우리에게 숙소 음식 가격은 너무 비쌌다.


어쨌거나 나는 주인장을 따라 주방에 들어가 신나게 라면을 끓였고,
그날 아침도 일행들과 함께 어쩔수 없는 '면식수행'을 했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짐을 챙겨서 곧바로 다음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한 손에는 카메라를 쥐고,
다른 한 손에는 나무 지팡이를 쥐고,

아무래도 오늘은 내리막 코스다 보니,
느긋하게 걸으며 주위 풍경이나 감상하기로 맘 먹었다.




"나 천천히 사진 찍으면서 갈께, 신경쓰지말고 먼저 가~"


일행들에게는 미리 통보하듯 한마디 해놓고,

조금 뒤떨어져서,
천천히... 천천히 걸었다.

그냥 조용히 혼자서,
이 모든 것들을 내 카메라에,
그리고 내 마음에 담고 싶었다.




그러고보면 나는 인도로 혼자 여행을 떠났지만,
역설적이게도 항상 혼자가 아니였다.

나는 늘 누군가와 이야기하며 길을 걸었고,
누군가와 만나고 다시 헤어지며,
자질구레한 잡담도 주고 받았다.

한국인이든, 인도인이든,
나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갔다.


어쩌면 내가 무인도에 떨어지지 않는 이상,
타인과의 교류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정말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물론 다른 사람들과 복잡하게 얽힌 관계가 싫어서도 아니고,
그 사람들 자체가 싫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굳이 한가지 이유를 찾아보자면,
사람들과 함께 지내다보면,
마치 내 자신을 잃어버리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일게다.

다른 사람들의 색과 중화되는 느낌.
조금씩 조금씩 타인의 색에 젖어가다가,
어느순간부터는 내 색이 무엇인지도 잊어버린 채,
내가 왜 돌아다니는지조차 알지 못하게 되버릴 거 같은 느낌이었다.




"Hey~~!!"

간만에 허세 가득한 생각으로 머리속이 복잡한 가운데,
저 멀리서 앞서가던 두 녀석이 나를 보고 웃으며 손을 흔든다.
'헤이~' 뒤에도 몇 마디 더 했던 것 같은데 잘 들리지는 않았다.


...으이구..
그냥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저 녀석들은 그냥 저렇게 즐기고 있는데,
나는 쓰잘떼기 없는 생각이나 해대고 있구나..

'내 자신'이고 뭐고,
일단은 그냥 즐겨보자.



나는 한달음에 녀석들이 있는 곳까지 달려갔다.




길을 걷는 동안,
주위에는 아름다운 풍경이 시시각각으로 펼쳐졌다.


멋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해서 사진기로 한번 찍었는데,
몇 발자국 걷고나면 또 다시 멋진 장면이 나와서 또 찍고마는.. 그런식이다.

덕분에 카메라를 가방에 넣었다 뻈다, 넣었다 뺐다..
렌즈를 단렌즈를 끼웠다가, 번들렌즈를 끼웠다가.....-_-

적어도 이날 만큼은,
컴팩트 디카를 가져온 누나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마치 한적한 시골 길을 걷는 듯한 기분으로,
가다가 힘들면 좀 쉬고, 배고프면 식빵에 땅콩버터를 먹으며 갔다.

그렇게 서둘지도 않고,
또 그리 느리지도 않았다.


우리와 비슷한 시간대에 '고라빠니'를 출발했던 사람들과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더이상 누군가를 앞 지르려고도,
혼자 걸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런게 트래킹의 '맛'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