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가기/India

인도여행 101 - 달라이 라마를 찾아서


황금사원에서의 기나긴 허세타임을 뒤로하고,
밤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숙소로 돌아왔다.

황금사원의 숙소는,
4개의 커다란 방과 1개의 외부 도미토리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나는 'Lady first' 정신에 입각하여,
누나에게 안쪽에 있는 방 자리를 내주고,
여러개의 침상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외부 도미토리에 내 침낭을 펼쳤다.
(사실, 이거 뭐 말이 좋아 Lady first지... 그냥 나이빨에 밀렸다고 볼 수 있.....)


내가 번데기처럼 침낭에 몸을 감싸고 침대에 눕자,
때마침 옆에 누워있던 서양 커플은 과도한 스킨쉽을 시전하기 시작했는데,
대략 10cm 옆에서 4D로 전해지는 그들의 애정행각은 나를 불면증 환자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아,,,


나는 왜 황금사원에서까지 요녀석들의 애정행각을 보고 있어야만 하는가...




다음날 아침,
날이 밝자마자 우리는 '맥그로즈 간즈'라는 곳으로 가기 위해 다시 짐을 챙겼다.
누나는 떠나기전에 사원을 한번이라도 더 보고 오겠다며 새벽부터 혼자 바쁘게 움직였는데,
왠지 여기서 며칠 더 머물렀다간 시크교로 개종이라도 할 기세다.


..어쨌거나,
내게 있어서 티벳 망명정부가 위치한 맥그로즈 간즈는 꽤 흥미로운 곳이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티벳 문화와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무엇보다 그곳에 가면 달라이 라마를 만나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푸쉬카르에서 만났던 누님의 말에 의하면,
1년의 대부분을 맥그로즈 간즈에서 지낸다는 달라이 라마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Teaching도 열기 때문에, 운 좋으면 달라이 라마를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이야..달라이 라마를 만날 수 있다니..'

나는 무슨 연예인 사인회라도 가는 것마냥,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는데,


그래서인지 싸이클 릭샤를 잡아타고 근처에 있는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와중에도,
암리차르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맥그로즈 간즈에 대한 셀레임이 더 컸다.





"저기.... 누나... 우리 지금.. 못할 짓 하고 있는거 아냐? ㅡ.ㅡ?"


싸이클 릭샤를 타고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데,
나는 계속해서 불편한 느낌을 받았다.


이유인즉슨,
우리를 태운 싸이클 릭샤꾼은,
원체 삐적 마른 체형에 살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고,
겉보기에도 나이가 60~70은 족히 되보였는데,

그런 그가 새벽의 찬공기를 마시며,
'끼기기긱~' 소리와 함께 힘겹게 페달을 밟아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건 마치 의도치 않게 우리가 노인학대를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게다.


게다가 이 늙은 릭샤꾼은,
우리를 태우고 가는게 얼마나 벅찼는지,
단 한번도 안장에 앉지 못한 채, 자신의 체중을 실어가며 혼신을 다해 페달을 밟아댔는데,

불행하게도, 잠시후 펼쳐진 오르막 코스에서는 그 방법마저도 통하지 않았고,
중간 중간 힘에 부쳐 자전거가 뒤로 밀릴때면,
뒷 좌석에 앉았던 나까지도 안쓰러운 탄식을 내뱉을 정도였다.


어쨌거나,
이 상황을 지켜보는 우리로서는,
부모님뻘 되는 분에게 이런 중노동을 시키는 것 같아,
마치 바늘방석에 앉은 것마냥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저.... 그냥 우리 내려서 갈께요 ㅠ ;;;"

보다못한 내가 좌석에서 내린후 걸어간다고 하자,

그는 연신 거친 숨을 내쉬면서도 괜찮다며 그냥 타라고 강권을 해댄다.


하아...

아니 이거 무슨...



사진출처 : http://lp114.co.kr/plus_a/products/productdetail.php3?CateCode=04&ProCode=1234931210&Length=2

릭샤를 타게 되서 죄...죄송합니다.. ㅜㅜ


나는 그저 돈내고 릭샤를 탔을 뿐인데..

노인에게 몹쓸 짓을 하는 놈이 되어가는 것 같은 이 기분...



아무래도,
앞으로 싸이클을 탈때는 반드시 젊은 릭샤꾼이 운전하는 걸로 타야할 것 같다.




암리차르에서 맥그로즈 간즈까지 가는 길은 꽤 피곤했다.

'암리차르 -> 파탄콧 -> 다람살라 -> 맥그로즈 간즈' 로 로컬 버스만 총 4번을 갈아타야만 했는데,
이건 무슨 서울에서 부산까지 시내버스로만 가는 느낌이다.


게다가 같이 버스를 탔던 사람들은 어찌나 매정한지,
다른 버스로 갈아타야 되는 곳에서, 우리에게는 아무말도 없이 자기들끼리만 옆에 있는 버스로 옮겨타곤 했는데,

그 모습을 본 나와 누나는 영문도 모른 채,
그저 버스에 자리 많이 생겼다고, 얼씨구나 탭댄스를 춰대며 의자에 털썩 앉아댔으니,
보다못한 버스기사가 우리보고 빨리 옆 버스로 옮겨타라고 소리칠 때에 그 뻘쭘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어쨌거나,
대략 8시간이 걸려서 맥그로즈 간즈에 도착할 수 있었고,
내 몸은 이미 피곤에 찌들어 버렸다.




그래도..
이제 달라이 라마를 볼 수 있겠구나...

장장 8시간에 걸친 버스 투어를 견딘 끝에 맥그로즈 간즈에 도착했지만,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나는 다시 힘을 얻었고,

일단 근처 전망 좋은 곳에 숙소를 잡자마자,
방에서 짐을 풀며 옆에 있던 주인장에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혹시 달라이 라마 teaching이 언제 있는지 아세요?"



"아, 여기 쭉 계시다가, 그저께 바라나시로 가셨어요~"




뭐...?


어디??


바라나시??


바라나시라고?





오늘따라,
숙소 베란다에서 바라본 석양이 참 아름답다.


하아...

하기야.. 그러고보면,
달라이 라마도 스케쥴이라는게 있다는 걸 깜빡한 내가 잘못이지.

무슨 친구네 집 들리듯이,
와서 벨만 누르면 나올 줄 알았던 내가 죽일놈인 게다.


..자...
이제 그럼 맥그로즈 간즈에서 뭘 한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