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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기/India

인도여행 103 - 그들의 두랭에 박수를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간 티벳 박물관은 생각보다 꽤 아담했다.
뭐, 그렇다고 '대영 박물관'이나 '국립 중앙 박물관' 수준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후미진 골목 안에,
그럴싸한 간판도 하나 걸려있지 않은 건물 모습은,

뭔가 '티벳 박물관' 하면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기묘한 조각상이 나를 반겨줄거라 예상했었던 나를 살포시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아마 건물 외벽에 'Tibet Museum' 이라고 붙어있는 작은 표지판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나는 죽을때까지 이곳이 그저그런 티벳 음식점인 줄로만 알았을게다.




하지만 막상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나는 2가지 관점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되었는데,

첫째로는,
의외로 건물 내부가 쾌적하고 말끔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우리외에 관람객이 단 한명도 없다는 것이었다.


뭐, 덕분에 마치 우리 둘만 박물관을 전세낸 것마냥,
넓은 공간 안에서 백스텝도 밟아대며 마음껏 구경할 수 있었지만,

이렇게 관람객이 없어서야,
과연 운영이나 제대로 될런지는 당최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벽에 걸린 사진과 TV영상들은,
달라이 라마와 티벳인들이 인도로 망명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친절하게도, 그 옆에 달린 커다란 보드판에는 영어로 자세하게 부연설명이 되어있었다.


그런데,
우두커니 서서 그 글자들을 읽고 있자니,

이건 내가 지금 박물관에 있는건지, 토익 파트 7을 풀고 있는 건지,
조금씩 수단과 목적의 뒤바뀜 현상을 느끼기 시작했는데,

옆에 있는 누나를 쳐다보니,
누나는 뭔가 이해가 된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그 글들을 바라보고 있다.


'아...질 수 없지...'

근본을 알 수 없는 이 승부사 기질은,
나를 다시금 글에 집중하게 만들었고, 나도 모르게 독해 속도가 빨라져갔다.




사실 이곳에 오기전부터,
'티벳에서의 7년', '쿤둔' 등의 티벳관련 영화는 물론이고,
서울에 있는 '티벳 박물관'까지 찾아가봤었던 (물론 실패했지만) 경험이 있을 정도로,
티벳 역사에 상당한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들은 현재 나라를 잃었으며,
빛바랜 사진 속에 티벳 여권만이 '티벳'이라는 나라가 한때 자주적인 여권을 발행했던 독립국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만약,
1945년.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지 않았다면,

떠올리기조차 끔직하지만,
아마 지금 티벳의 현실이 그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진 않을 것이다.




RC테스트를 마치고 2층으로 올라서니,
중앙 탁자위에는 관람객들을 위한 방명록이 놓여있었는데,

되지도 않는 영어실력으로 긴 지문을 읽으면서도,
티벳 독립 운동에 대해 느낀바가 적지 않았던 나는,
뭐라도 한마디 적고 싶은 마음에 조심스럽게 방명록 위에 펜을 잡았다.


무슨 말을 써야 간지가 날까...


막상 펜은 잡았지만,
딱히 쓸 말은 생각이 나지 않았고,
또 그렇다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Free Tibet' 이란 단어를 쓰고 싶진 않았다.




나름 고심끝에.. 마음을 담아서,

'그들의 투쟁에 박수를...' 이라는 글자를 수줍게 적었는데,



...어째 적고보니,
'그들의 두랭 박수를...' 이라고 적은 것처럼 보이는 거다.



아앗....



이건 필시 너무 의도적으로 멋진 말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에,
나도 모르게 오른쪽 이두박근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갔기 때문일게다.


생각같아서는 지우개라도 찾아서,
남들이 보기전에 재빨리 지워버리고 싶었지만,
이미 종이에 깊게 스며든 볼펜의 검정색 잉크는, 내게 지울 기회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아.. 그냥 Free Tibet 이라고 쓸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