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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기/India

인도여행 102 - 숙소 사람들


다음날 아침,
달라이 라마가 바라나시로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멍하니 숙소 발코니에 서서,
이제 맥그로즈 간즈에서 뭘 해야 할 지에 대해 고민에 휩싸였다.



"혼자왔어요?"

잠시동안 멍을 때리는 사이,
등 뒤에서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는데,
뒤를 돌아보니, 30대 후반정도로 보이는 한국인 아저씨다.


"아, 안녕하세요."

나는 얼떨결에 그와 이야기를 나누게 됐는데,
그 아저씨의 말을 들어보니, 그는 인도에 와서 한달내내 맥그로즈 간즈에서만 머물고 있단다.

게다가 예전에도 1~2달 일정으로 인도에 온 후,
오직 맥그로즈 간즈에만 주야장천으로 머물다가 돌아간다고 하는데,


아니 이건 전생에 무슨, 맥그로즈 간즈 길바닥에서 아이패드라도 주웠던 분이신지,
한동안 그의 '맥간 예찬론'은 그칠 줄을 몰랐다.




그에게서 대략 10분동안,
'맥간 예찬론' 강의(강의라 쓰고 세뇌교육이라 읽는다.)를 듣고나자,

그는 갑자기 생각이 난 듯,
뜬금없이 내게 선물을 주겠다며 숙소에 들어가서,
신문지로 덕지덕지 둘러 싼 물건을 하나 가지고 나왔다.


마치 귀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양,
그는 그것을 양 손으로 받쳐들고는 말을 이어갔다.

"내가 지금 감기에 걸려서 못 마시니, 챙겨뒀다가 너라도 마셔~"




그가 내게 준 건,
'God Father' 라는 인도 맥주였는데,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에게,
맥주를 공짜로 받게 되는 게 영 찜짐했던 나는,


"아니, 뭐 이런걸 다........"

라며 예의상 딱 한번 사양을 하곤,
이내 잽싸게 그것을 건네받아 가슴팍에 깊숙히 집어 넣었다.



그런데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 무슨 우리가 마약을 거래 하는 것도 아닌데,
달랑 맥주하나 주면서 굳이 그걸 신문지로 돌돌 말아대고..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보기전에, 빨리 숙소로 가지고 들어가라며 내게 재촉을 해대는 이유가 여간 궁금해졌다.



"저기 근데 이걸 왜 이렇게 비밀리에 주는 거예요 -_-?;"



"아, 여기 숙소 주인장이 술 가지고 있는거 보면 엄청 화를 내거든 ^^ ..."






음... 그러니까..
이거 무슨..

'시한폭탄 돌리기 게임' 같은 거구나??


그럼 이제 내가 술래???? ^^?



하아..이거..영..
맥간 온지 첫날부터,
슬슬 가족오란관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어쨌거나, 그렇게..
아저씨에게 뜬금없이 맥주를 선물로 받고 방으로 돌아오자,
방에서 가이드북 지도에 구멍이 뚫릴 정도로 별표를 쳐대던 누나는,
언제 또 알아봤는지, 근처에 있는 티벳 박물관에 가보자며 나를 재촉했고,

나는 방 한 쪽 구석에 맥주를 잘 숨겨(?)놓은 뒤,
숙소에 있는 공동 발코니로 먼저 나와, 한가로이 주변 경치를 감상하면서 누나를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간 시간을 보내던 도중,
나는 숙소를 나서는 백인여자와 한국인처럼 생긴 동양여자 여행객을 마주치게 됐는데,

백인 여자가 나를 향해 반갑게 웃으면서 인사를 건넸다.


"#@*☆&#~"

그런데 이게 영어도 아닌것이,
그렇다고 스페인어도 아니고.. 
당최 뭐라고 하는지 알아 들을 수가 없는게다.


내가 잘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을 짓자,
그 여자는 똑같은 말을 3~4번 반복하며 말을 했고,

여전히 어깨를 들어올리며 이해가 안된다는 뉘앙스를 풍기자,
옆에 있던 동양여자가 안쓰러웠는지 친절하게 영어로 내게 설명을 해줬다.


"아, 네팔사람이세요?, 이 여자는 지금 '안녕하세요~' 라고 티벳어로 얘기하는 거예요 ^^;"

.
.
.

아...그렇구나..

그분의 친절한 설명을 듣고나니,
그제서야 모든 상황이 다 이해가 되었지만,


왠지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 지는 것은,

...글쎄, 단지 바람결에 먼지가 눈에 들어왔을 뿐이겠지..^^




사실 생각같아서는,
그들에게 한국인이라고 속 시원히 밝히고도 싶었지만,
굳이 '티벳인과 티벳어로 반갑게 아침인사를 했다' 는 그들의 소중한 추억을 훼손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이 모든 것은 장염 때문에 살이 빠져서 일거야...'

'아니, 어쩌면 현지인과 비슷한 비니 모자를 쓰고 다녀서 일지도 몰라...'


갈수록 현지화되는 내 외형을 보면서,
나는 굳이 만들지 않아도 되는 알리바이를 만들어대기 시작했고,

곧이어 발코니로 나온 누나와 함께,
티벳 박물관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