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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기/India

인도여행 53 - 남정네들의 습격


카주라호역은 준공된지 얼마되지 않았는지 상당히 깨끗했다.

바람을 맞으며 역 밖으로 나오니,
오르차에서 연락을 받고 우리를 픽업하러 나온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인도 남자 2명이었는데,
2명다 한국말을 거의 현지인처럼 사용하는 걸 보고 깜짝놀랬다.
게다가 '니키'과 '민수'이라는 어설픈 한국어 이름까지 쓰는 녀석들이었다.
(사실 웬만하면 블로그에서 이름을 거론하고 싶지 않지만, 이녀석들은 좀 거론할 필요가 있다 -_-)


엉겹결에 그들의 차를 타고,
카주라호 시내에 자리잡은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근처에는 꽤 맛있다는 한국식당도 있어서,
간만에 포식도 할겸, 닭볶음탕을 시켜서 먹었다.
4인분을 시키니, 커다란 세숫대야에 푸짐하게 담겨 나오는데 오랜만에 먹어서인지 상당히 맛이 있었다.

식사를 하던 도중,
우리를 숙소까지 안내해준 니키와 민수라는 녀석이 식당으로 찾아왔다.

"요즘 성수기라 표 구하기 힘들꺼예요, 바라나시 가실꺼면 내가 250루피에 표 싸게 구해줄께요."

나는 왠지 미심쩍은 마음에 좀 더 알아보고 우리가 직접 끊겠다고 말하자,

"그래봤자 대기표일꺼예요. 비싸기만하고.. 뭐, 우리에게 표를 안사고 싶으면 안사도 되요. 다만 친구로서 도움을 주려던 거예요."

이말에 다들 그럼 티켓을 사겠노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들이 못 미더웠는데,
이 상황에서 제일 답답한건, 녀석들이 워낙 한국말을 잘 알아듣기 때문에 일행들에게 속시원히 얘기를 못한다는 것이다.


일행들과 터놓고 얘기를 할 수 없어서,
결국 나는 화장실에 간다며 잠시 자리를 비운다음,
첩보영화 찍듯이 잽싸게 옆집에 있는 여행사를 찾아가 바라나시행 열차 가격을 물어보았다.

"바라나시? 음, 200루피요."


이녀석들.. 그럼 그렇지.
쇼부치기도 전에 200루피를 여행사에서 먼저 불렀으니,
직접 티케팅 창구에 가서 표를 사게 되면 이보다 훨씬 저렴하게 살 수 있는게 뻔했다.
(실제로 다음날 직접 기차예매 창구에서 티케팅을 하니, 171루피에 표를 구매할 수 있었다.)



그런데 250루피에 뭐?



친구로서의 도움?? ㅋㅋㅋ





다시 식당으로 돌아와서,
일단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 녀석들에게 표를 사겠다고 말을 해두고, 숙소로 돌아왔다.


자, 이제부터는 고도의 심리전이다. -_-
그녀석들이 숙소를 알선해줬기 때문에,
숙소를 떠나기전에는 어쨋거나 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었다.




저녁을 먹고,
누나와 나는 숙소앞에 있는 호수를 거닐며, 옆에 있는 성벽에서 일몰을 바라보았다.
인도에 와서 그동안 많은 일몰을 봐왔지만, 이곳에 일몰은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엄청난 풍경이었다.

성벽에는 연인들처럼 보이는 남녀커플이 짝을 지어 여기저기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는데,
가까이 가서 그 모습을 보고나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거기에 있는 여자는 모두 서양 혹은 동양의 외국여자고, 남자는 모두 인도인이었던 거다.


사실 이곳에 오기 전부터,
카주라호에 대해 안좋은 소문들을 익히 들어왔었다.
카주라호 자체가 Sex에 관한 조각상들이 많은 곳이기도 하고,
여자 여행자를 타켓으로 한 인도 남자들의 들이댐이 꽤 심한 곳이라는 것도 익히 알고 있었다.
때문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어느정도 단단히 예상을 했던 터였다.

그런데 눈 앞에서 펼쳐지는 인도 남자녀석들의 치근덕거림은 실로 상상을 초월했다.
호숫가를 거닐던 도중엔 왠 꼬마 남자아이가 끈적한 멘트를 날려대지 않나.


이윽고 우리가 앉아있는 곳으로도 인도 양아치 2명이 알짱대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내가 옆에 있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누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대화를 해보려고 했다.

옆에서 얘기를 들어보니 한명은 선생이고, 한명은 의사라는데.

이거 뭐 구라가 너무 눈에 보이잖아 ;
아니, 영어도 제대로 구사 못하는 녀석들이 뭔노무 ㅡ.ㅡ;


잠시동안 그들의 구라를 감상하던 우리는
다시한번 카주라호의 들이댐은 역시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 되새기며, 숙소로 발을 옮겼다.




어느덧 해가 저물고,
우리가 숙소에 거의 다다르자,
갑자기 뒤에서 달려오던 오토바이 2대가 우리 곁에 멈춰 섰다.

오토바이에는 각각 니키와 민수가 타고 있었는데,
뒷자석에는 우리와 오르차에서 같이 온 누나 2명이 녀석들의 허리를 꽉 껴안은 채,
일명 '오빠달려' 포즈를 취해주시고 있었다.

"아니, 누나 뭐하고 있는 거예요? ㅡ.ㅡ?"

"아~ 니키랑 민수가 오토바이로 카주라호 구경시켜준대서 ^^"

"아니 이 밤중에? ㅡ.ㅡ?" 


대답을 듣기도 전에 오토바이는 곧 굉음을 내며 우리앞을 지나갔고,
나와 누나는 그저 'Cool한 오르차 누나'들을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음.. 이 동네, 거참 거시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