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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기/India

인도여행 83 - (네팔) 고라빠니


다음날 아침.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잠이 깼다.

개인적으로 실내에서 듣는 빗소리를 꽤 좋아하는데,
다음 목적지인 '고라빠니' 로 해지기 전까지는 도착해야 했기 때문에,
이 상황을 맘 편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어쨌거나,
우리는 비가 그치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도록 미리 짐을 챙겨두고,
아침식사 먼저 숙소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식사를 마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운좋게 비가 그쳤고,
하늘은 더 없이 청명한 모습이다.

게다가 숙소 밖으로 나오니,
산등성이 사이로 눈 덮힌 산이 보였는데,
그제서야 내가 동네 뒷산을 오르고 있지 않다는 게 실감이 났다.


..그러고보면,
사람의 시야는 '마음'에 따라 얼마나 쉽게 변하는지...

어제 숙소에 들어설때는 이런 설산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휴식을 취하고 주변을 보니, 이렇게 설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무엇을 보든, 한걸음 물러서서 보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임한다면,
좀 더 폭넓은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뒤따라 나온 일행들은 연신 감탄사를 외치며,
저마다 설산을 찍겠다고 카메라 렌즈를 들이밀었다.

덕분에 출발시간은 조금 늦어졌지만,
저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산들과, 내 발 아래로 지나가는 구름을 바라보는 경험을 놓칠 수는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산 정상에 오른 느낌..

마치 내 몸안에 막혀있던 무언가가 상쾌하게 뚫리는 기분이다.




배낭을 메고 산을 오르기 시작하면서,
오전에 출발했던 숙소는 조그만 점으로 변해갔다.

조금씩 하늘에 가까워 지는 느낌이다.




어느 순간에는 구름이 바로 내 눈 앞에서 지나가기도 했다.

조용히, 그리고 아주 느리게.


뭔가 피부에 닿으면 상당한 수분 공급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쉽게도 구름과 조우하려면 낭떠러지에서 2~3걸음을 앞으로 더 내딛어야 한다는게 문제였다.




출발한지 5시간이 지나자,
파란색 지붕의 건물들이 모여있는 곳이 보였다.

사실 '고라빠니'에 도착하려면 아직도 꽤 걸어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우리가 축지법을 쓴건지, 길 옆에는 'Ghorepani' 라는 표지판이 붙어있었다.


그러고보면 오늘은 어제에 비해 확실히 쉬운 코스였고,
덕분에 어제는 죽을똥 살똥 하던 일행도 별 일 없이 두번째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고라빠니에서는 별다른 흥정없이 숙소를 정했고,
나는 곧장 숙소 주인장을 따라 2층에 있는 방으로 향했다.


"이방은 경치가 아주 좋아요."

주인아저씨가 추천하는 것처럼, 창문밖으로 보이는 경치는 굉장했다.


다만 분명히 실내임에도 불구하고 입에서는 허연 김이 나오고,
창문 사이에 난 조그마한 틈으로 천연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기는 했지만,
나는 창밖으로 설산이 보이는 이 방이 꽤 마음에 들었다.


물론 해발 2874m에 위치한 곳이지만 별다른 난방시설이 없기 때문에,
추위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침대위에 놓인 두꺼운 이불이 전부다.

그래서인지 이불의 두께는 족히 10cm정도가 되는데,
잘때는 '반팔+긴팔+쟈켓+침낭' 에다가 '10cm 이불' 콤보를 더해주면,
그럭저럭 한밤중에도 얼어죽지 않고 생명의 불씨는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침대위에서 배낭에 든 짐을 풀어헤치며 문득 창밖을 바라봤다.


한눈에 들어오는 거대한 산.
밖에는 바람이 불고 있는지 산봉오리 한쪽에 쌓인 눈이 흰가루처럼 흩어지고 있다.


'이야.. 역시 배경 하나는 끝내주는구나..'


내심 감동의 눈물을 흘려대며,
자연의 웅장함을 찬양하고 있을 무렵,


바로 밑 1층 샤워실에서는 "뜨거운 물이 안나와~~!!!" 라는,
단말마적 비명 소리가 마치 'BGM'처럼 끊임없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엄청 차갑나봐 ㅋㅋㅋㅋㅋㅋㅋ'


찬물로 냉수마찰 하고 있을 일행의 모습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는데,

그것도 잠시.


나는 그 순간.
다음 샤워 차례가 '나'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곧이어 깊은 시름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샤워하다 죽고싶진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