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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기/India

인도여행 81 - (네팔) 첫 발걸음


식빵 부스러기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눈 앞에 이어진 길을 따라 한없이 걸었다.

주위에는 홍콩 남자, 한국 단체 관광객들, 스페인 여행자들.. 등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도 우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길을 걷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지 '가이드'나 '포터'들을 데리고 있었는데,
우리에겐 작은 지도 한장이 '가이드'였고, 든든한 양쪽 어깨가 '포터' 역할을 수행해 주었다.




한동안 평탄한 길이 이어지다가,
어느순간부터 가파른 언덕으로 바뀌었는데,
일행들도 조금씩 힘든 기색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아직까지 개인적으로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아마 군대에 있을때, 한라산을 1주일에 한번씩 오르락 내리락했던 경험때문인 것 같다.
(개똥도 쓸 때가 있다더니.)




하지만 콧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올라가다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일행들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고,
중간중간 가던 걸음을 멈춰, 일행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시간 또한 길어져갔다.


나는 일행들이 도착할 떄마다,
다큐멘터리 촬영하는 것 마냥 사진을 찍었는데,

렌즈에 담긴 사람들의 모습은,
'여유'는 이미 한국에 두고 온 듯,

그저 고개를 푹 숙인 채,
이 악물고 걸어오는 모습들 뿐이었다.




나름대로 Cheer up 해준답시고,
높은 바위 위에 앉아서 일행들에게,

"언넝 올라와~ 여기 공기 좋네~"

라고 말해봤지만,

아마 일행들에겐 그저 "Air드립" 으로 들렸을 뿐일게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행들의 허리각도는,
시골에 계신 외할머니마냥 점차 90도로 굳어졌고,
그들 사이에 대화는 이미 사치가 되어버린지 오래였다.


심지어 일행 중 한명은 얼마나 뒤쳐졌는지,
한참을 기다려봐도 보이질 않았다.




다시 한참후에 만난 누나는 연신 "Because of 나이" 를 외쳐댔고,
뒤이어 올라온 녀석은 그저 묵묵히 '물 있으면 한 모금만 달라'는 뉘앙스의 액션을 취하곤 했다.


그리고....
역시나 나머지 한명은 도통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트래킹 시작한지 이제 겨우 첫날인데,
이건 무슨 겉모습만 보면 '걸어서 세계일주' 한 5년 하고 돌아온 사람들 같다.


갈수록 몸의 실루엣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되어가는 일행들을 바라보며,
남은 트래킹 일정이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이러다가 오늘 숙소 도착하기 전에,
네발로 기어가는 상황이 연출되진 않을까..




사실 개인적으로 트래킹과 일반 등반과는 조금 다르다고 본다.

남들보다 높은 곳을, 빠르게...
즉, 어느 목표점에 도착하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을 등반이라고 한다면,
트래킹은 그 결과보다는 걸어가는 과정 자체에 있다.


주변 풍경을 감상하고, 생각하고,
코스 중간에 위치한 카페에서 차 한잔을 할 수 있는 여유.

바로 그런 점들이 '트래킹'과 '등반'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곳에서 빠르거나 느린것은 의미가 없다.


흔히 포카라에 있다보면,
다른 사람들에게 트래킹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되는데,

ABC코스를 단 며칠만에 주파했다느니,
쉬지않고 걸어서 다른 트래커들보다 월등하게 빨리 다녀왔다는 등의 이야기들이다.


마치 글로벌 경쟁 시대에 1위라도 차지한 것마냥,
자랑스럽게 무용담을 늘어놓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 시대에 '1등 주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여유'를 빼앗아 갔는지 느낄 수 있다.




철학책이라도 한권 써낼 듯한 상념에 젖어있을 무렵,
갑자기 등 뒤에서 '딸랑' 거리는 종소리가 났다.

뒤를 돌아보니,
큰 눈망울을 껌벅거리며 당나귀 한마리가 콧바람을 킁킁 내뱉고 있다.


'아...이런..'

그러고보니 내가 '길막'을 하고 있었구나.


미...미안하다. 나귀야.




"아직 멀었어?"

한참 후에 올라온 누나가 물을 마시며 내게 물었다.


그러고보면 주변도 이제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는데,
곧 머물만한 숙소가 나올거라던 가이드북의 설명과는 달리,
눈 앞에는 끝없이 이어진 언덕길만 보였다.


이대로 숙소를 못 찾은 상태에서 해가 저물어 버린다면 어쩌지.
게다가 산속이라 저녁은 빨리 찾아올테고.
날씨도 점점 추워지는 것 같았다.


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