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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기/India

인도여행 80 - (네팔) 트래킹은 시작되었다


푼힐 트래킹을 떠나는 날 아침.
나와 누나는 며칠전 만난 '한국인 남자 2명'과 함께 배낭을 메고 숙소 마당에 모였다.

이 '한국인 남자 2명'은,
포카라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연히 밥을 먹다가 알게 된 사이인데,
둘 다 나와 나이가 같고, 트래킹도 갈 예정이라고 해서,
이왕 가는 김에 우리와 같이 트래킹을 떠나기로 했다.




우리가 가게 될 코스는,
'나야풀 -> 울레리 -> 고라빠니 -> 푼힐 -> 따또빠니 -> 베니 -> 포카라' 로 이어지는 루트로,

일단 포카라에서 나야풀까지는 버스를 타고 이동한 후,
나야풀에서부터 신명나게 '걷고 또 걷기' 를 반복하면 되는 코스라 볼 수 있다.




버스를 타고 나야풀에 도착하자,
이곳이 트래킹의 시작이라는 느낌 때문인지,

뭔가 '자, 이제 여기가 스타트 라인입니다요^_^' 라는 피켓 하나 정도는 붙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막상 도착한 나야풀은 나의 이런 기대를 무참히 짖밟아버렸다.


그냥 딱 '산' 혹은 'Mountain' 이라는 단어에만 충실한 이 장소에서,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지, 얼마나 가면 되는지..
잠시동안 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




바로 그때 저 멀리서 '딸랑' 거리는 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는데,
고개를 돌려보니, 목에 작은 종을 메단 당나귀들이 짐을 가득 싣고 우리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 녀석들은 이내 우리를 지나쳐, 
언덕길 한쪽을 따라 움직였는데, 그제서야 우리는 그 쪽이 바로 트래킹 코스임을 알아차렸다.


'그래... 우리도 이제 움직여야지..'

각자 사진도 좀 찍고, 물도 한모금씩 마시며,
다시한번 각오를 다진 뒤, 출발 준비를 마무리했다.



이제 드디어 떠난다.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쾌청하고,
계속 걷고 있기 때문에 그다지 춥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사실 '히말라야', '안나푸루나' 하면,
뭔가 눈덮힌 산 위에서 거친 숨을 내쉬며,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내딛으면서 누군가가 뭘 물어보면,
최대한 목소리 깔고 "불가능, 그건 아무것도 아니지." 라는 멘트를 내뱉어줘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설산이 보이지 않아서일까.
이건 무슨 초겨울에 동네 뒷산 올라간다는 느낌이었는데,

그나마 간간히 보이는 다른 트래킹 여행자들 덕분에,
이곳이 한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기도 하고 천천히 길을 걷기를 대략 한시간여,
일행 중 누군가가 외쳤다.


"좀 쉬어 갈까?"


그러자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회심의 미소를 띄웠고,
서로 가방안에서 뭔가를 뒤적거리더니, 이내 작은 비닐봉지와 유리병을 주섬주섬 꺼내들었다.

그것은 바로 이번 트래킹을 위해 야심차게 준비했던 식빵땅콩크림.


하지만 가방안에 꾹 눌러담았던 탓에,
이리저리 뭉개지고 압축되어, 이미 식빵은 본래의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해있었다.


물론 애초에 뉴요커 같은 브런치를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살짝 만지기만 해도 산산히 부서지며 밀가루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식빵을 볼때마다,

이건 대체 길거리 비둘기 모이와 다른게 뭔지..
여기에 땅콩크림은 발라먹어야 하는지,
아니면 차라리 땅콩크림에 식빵가루를 뿌려먹는게 빠를지..

혼란의 연속이었다.



사진출처 : http://www.talkoftomatoes.com/2006/12/04/omelette-bruschetta-bread-crumbs

결국 우리는,
'문화재 복원팀' 마냥 조각난 식빵의 퍼즐을 조심스럽게 맞춰가며,
땅콩크림과의 결합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주위에는 현지인 몇명이 우리를 쳐다보며 지나갔는데,
비록 말은 안했지만 그들의 안쓰러운 표정을 통해 '의미'만큼은 충분히 전달받을 수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손바닥을 오므려 소중히 쥐고 있던 식빵 부스러기를 털어내고,
잠시동안 깊은 상념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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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들의 트래킹은 시작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