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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기/India

인도여행 106 - 달호수


달호수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복잡하지는 않았지만,
아스팔트길을 따라 한없이 걸었음에도, 그놈의 '달호수'는 눈곱만큼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간간히 주변 사람들에게 달호수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물어봤지만,
마치 다 같이 입이라도 맞춘 듯, '조금만 가면 나와요' 라는 상투적인 대답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대체 어떤 호수일까?..'

사실, 왠지 모르게 달호수는 기대가 컸다.

아메다바드의 인공호수, 자이살메르의 가디사가르 호수, 포카라의 페와호수..
지금껏 들렸던 호수란 호수들은 모두 저마다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계속 길을 걷다보니,
반대편에서 한 백인 여자가 우리 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이 근처에 길은 여기 하나뿐이라,
달호수를 들렸다가 오는 게 분명해서,

나는 주저없이 그녀에게 달려가,
'달호수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경관은 어떤지'에 대해 슬그머니 탐문수사를 벌이기 시작했다.


"음... 그게... 뭐, 그냥 그래요."

몇 번을 망설이던 여자는,
약간 이마를 찡그린 채 억지웃음을 지어가며 대답했는데,


그제서야 우리는 뭔가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10분 정도를 더 걸어가자,
드디어 '달호수' 임을 알리는 표지판을 볼 수 있었는데,


비록 백인 여자의 말이 조금 거슬리긴 했지만,
드넓은 호수를 바라보며 감상에 젖을 생각을 하니 조금씩 설레였고,
나는 호수를 더 잘 내려다 볼 수 있도록 조금 높은 곳에 올라가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 아름답구나... 아주그냥..

내 눈에 들어오는 건,

말라 비틀어져가는 호수와,
조금씩 색을 더해가는 녹조현상,
그리고 만들어진지 족히 30년은 더 되어 보이는 오리 모양의 보트가 전부였다.


이건 뭐 주변을 둘러보고 자시고,
시골 낚시터보다도 작은 규모여서,
대략 1분이 되기도 전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구경을 마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나는,
왜 이놈의 달호수가 가이드북에는 언급조차 안됐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아...

사실..그동안 조금 우습게 보는 면도 없지 않았던 가이드북에 대해,
나는 마음 속 깊이 사죄의 메시지를 보내며, 호수 주변을 찬찬히 거닐기 시작했다.


한쪽 눈알이 빠진 오리보트는,
호수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구정물 위를 정처없이 떠돌았고,
이를 배경삼아 동네 아이 몇 명은 한 쪽 구석에서 크리켓을 하고 있다.


이거 참,

묘하게 운치있네. 




주변에 뭔가 숨겨진 볼거리라도 있을 거라며 호수 주위를 몇 바퀴 돌아봤지만,
우리가 발견해 낸 거라곤, 근처 건물에서 광적으로 춤을 춰대며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 몇 명과,
호수 옆에서 멀쩡한 잡초는 제쳐둔 채 흙만 씹어먹고 있는 당나귀 몇 마리가 전부였다.


비록 도착한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어느 샌가 벤치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고 있는 누나에게,
나는 결국 용기를 내어 말을 건넸다.


"그만 돌아갈까?"




생각 같아서는 오리 보트라도 타며,
론리 아일랜드의 i'm on a boat 라도 불러제끼고 싶었지만,
옆에 있는 누나를 봐서라도 차마 실행에 옮길 수는 없었고.


막상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갈 생각을 하니, 막막하기 그지없었는데, 

그래도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걸어가니,
돌아오는 길은 예상외로 그리 길지 않게 느껴졌다.




간만의 수다 타임을 가지며,
다시 맥그로즈 간즈의 초입에 다다랐을 무렵,

우리는 한국인 여자 2명과 우연히 마주쳤는데,
무슨 기막힌 인연인지, 그분들은 우리에게 달호수로 가는 방향을 물어봤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서,
나는 달호수의 실상을 낱낱이 파헤쳐주고 싶었지만,

희망과 기대로 가득찬 그분들의 눈망울을 앞에두고,
차마 '흙탕물' 이라던가, '눈알 빠진 오리보트' 얘기를 꺼내기는 맘처럼 쉽지 않았다.


결국 나는 "저쪽으로 가시면 되는데, 뭐.. 큰 기대는 마세요." 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는데,
그 분들은 내가 뒤에 한말은 이미 자체 필터링으로 걸러내버린듯,
그저 좋다며 손을 흔들고는 내가 가리킨 방향으로 걸어가기 바빴다.


-_-; 음..


뭐...

사람마다 취향은 다르니까..

달호수와 함께 좋은 추억 쌓고 오시겠지...
 




  • verso 2011.03.22 11:39

    ㅋㅋ내가 못살아, 정말!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 대단한 내공입니다. 한쪽 눈알 빠진 오리를 볼 줄 아는 저 세심한 관찰력하며 아마도 뜻뜨미즈근한 온도일 얼마 안 되는 황토색 물과 녹조와 주위풍경..을 저렇게 살아있게 만들 수 있는 '글빨'이라니..(계속 정진, 수행하여 널리 인간을 행복하게 할 만한 소질이십니다^^) 사진빨 잘 받기로 정평난 인도 풍경이 저 정도라면..음..달호수의 실물/실상은 모쌀님 묘사 저 너머일 것으로 사료됩니다. 웃을 일 없는 뉴스들 속에서...덕분에 오늘도 한참 웃었습니다. 이렇게 유쾌한 낚임이라면..얼마든지, 몇 번이든지 자꾸 미끼를 덥썩 물고 말 듯..ㅋㅋ 오늘도 감사합니다. / 최근에 읽은 책이 이재강 기자의 <인도, 끓다>라는 책이었고, 읽고 나서는 '정말 인도, 모르고 다녔으니 망정이지 알고는 못 다닐 곳이야' 고개 절레절레 내흔들었습니다. 사실 칸다말 학살사건 때도, Shiv sena의 뿌나 독일빵집 습격 때도, 방갈로르 라즈 꾸마르 사건 때도 현장 중심 혹은 인근에 있었고 티비 통해 뉴스 보면서 도무지 영문 몰라 단지 그들만의 뉴스라고, 비현실적으로 보아넘겼던 화면들이 <인도, 끓다>를 통해 뒤늦게 정황 알게 되고 나니 무서워졌더라는 것 아닙니까? 다신 인도 못 가겠다, 싶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들락거리면서, 여정 따라다니면서 '아~ 인도 가고 싶다'로 변덕스러워지고 있네요. 이건 참..병입니다.

    • Mossal 2011.03.23 09:33 신고

      네, 여행가서 느끼는 것과 그 나라 실상은 다를 수 밖에 없죠.
      당시에는 왜 그런지 이해가 안가다가도,
      돌아오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도 있고..

      그런데, 예전에 인도 져먼 베이커리 폭탄사건 뉴스로 들었었는데,
      그때 인도에 계셨나봐요 ;;

    • verso 2011.03.24 08:49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여행지에서 보고 느낀 것과 실상의 차이라든가..같은 곳을 같은 때 갔더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각도와 초점에 따라 전혀 다른 사진이 나오죠. 티비 뉴스로 보고 듣고, 겪었으면서도 제가 몰랐던 건, 인도 사회나 역사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었고, 말(영어나 힌디)도 몰랐고, 단지 "인도 풍물 구경간 여행자 입장, 구경꾼의 시각"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영원한 금언일 것 같습니다. 보는 만큼 알아지지 않는 걸 보면...
      제일 위엣사진에 저 초록깡통이 쓰레기통 맞죠? 오호~ 신기한 풍경입니다. 서울에서도 요즘 보기 드물어진 쓰레기통을 인도 사진 속에서.. 저 쓰레기통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그러니까 달호수도 나름대로 유원지축에 드는갑습니다./
      예,발렌타인 때마다 습격 당하곤 한다더군요. 독일빵집, 아니 "져먼 베이커리"뿐만 아니라 외국인들 주로 많이 모이는 곳 대상으로요. 저는 그때 토마스 쿡에 환전하러 갔다가 쉬는 날도 아닌데 문닫았길래 돌아다니다가 식겁했답니다.

    • Mossal 2011.03.25 00:38 신고

      같을 곳을 여행하더라도 다들 느끼는 게 다르다는 건..
      그 사람의 사진기만 봐도 알 수 있겠더군요.

      뭘 관심있게 봤는지..
      어떤 것이 인상깊었는지..
      사진 찍은 걸 보면 대충 감이 오는 것 같아요 ㅎ

      뭐, 인도가..
      10여년 전부터 슬슬 여행 붐이 불어서 잘 안느껴지지..
      요즘도 은근슬쩍 사건 사고가 참 많긴 많은 곳인 것 같습니다.

  • 바람,그대 2011.03.22 12:48

    ㅋㅋㅋ저는 저런 물도 전혀 남아있지 않았던
    정말 아무것도.. 그상황이였는데 ㅋㅋ
    그래도 호수에 물을 보셨군요 ㅎㅎ 조금 부럽네요 ㅎ

  • 익명 2011.05.16 14:45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