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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기/India

인도여행 108 - 돌아오는 길


박수나트에서 화보 촬영을 마친 우리는,
바위를 타고 흐르는 빈약한 물줄기를 몇 번 바라보다가,
이내 숙소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언제나 그렇듯,
다시 걸어서 돌아갈 생각만 하면 눈앞이 캄캄해지지만,
뭐, 가진 게 튼튼한 두 다리밖에 없으니, 어찌 할 도리가 없다.




막상 돌아갈 때가 되자,
지금까지 충실하게 나를 추종해왔던 개는,
매점아저씨 앞에서만 온갖 아양을 떨어댈 뿐, 더 이상 나를 쫓아오지 않았다.

아마도 내게 티벳빵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것을 눈치 챈 모양이다.




결국 매점에서 녀석과 헤어진 채,
우리는 길을 따라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그런데 갑자기 누나는,
뜬금없이 건너편에 보이는 곳에 가보고 싶다며,
마치 노다지라도 발견한 것 마냥 바위 사이를 빠르게 걷기 시작했는데,

천천히 걸으면서 풍경사진이라도 찍어보려던 내 소소한 계획을,
몇 번이나 누나에게 설명해봤지만 역시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누나를 따라,
바위를 건너 숲속으로 들어가자,
아무것도 없을 것 같던 그곳에는, 신기하게도 아담하면서 꽤 전망 좋은 잔디밭이 숨어있었다.


"오~ 여기 좋은데~"

내 감탄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누나는 잔디밭 한 쪽에 앉아,
지인들에게 편지를 쓰겠다며 펜을 들었는데,
분위기상 나도 뭔가 옆에서 적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문득 생각해보니,
막상 그 옆에서 딱히 할 일이 없다.


군대 시절 이후로 '편지'라는 것과는 워낙 담을 쌓았었고,
편지를 쓴다한들 '누구에게', '뭐라고' 써야할지도 막막했기 때문이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쓰고 싶은 사람도, 쓸 말도 많지만,
차마 글로 옮겨서 전달할 자신이 없었다.




수첩을 꺼내,
몇 자 끼적거리던 나는,

이내 수첩을 다시 가방에 넣고,
혼자 바위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서 자리를 잡고 누웠다.

바위위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귀에 이어폰을 꼽자 몽롱한 비트의 재즈 음악이 흘러나온다.


구름 한점 없이 화창한 날.
옆에서는 현지인들이 빨랫감을 바위에 대고 신나게 내리치고,
나는 재즈 박자에 맞춰 손가락으로 바위를 툭툭 치고...



이런 '허세 of 허세' 같은 분위기 속에서,
조금 전에 편지를 보내려던 상황을 떠올려보니,
여행을 하면서 잊고 지냈던 사람들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지금은 뭘 하고 있을까?

그 사람들도 가끔 내 생각을 할까?




해가 중천에 뜬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늦은 밤에..
그것도 술이라도 한 잔 걸쳐야 떠오를 만한,
센티한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헤집기 시작했고,

이대로 가다간,
'인간관계에 관한 고찰' 이란 제목으로 책 한 권이 집필될 것만 같다.




점점 과열되던 허세 분위기는,
다행히도 때마침 숲 속에서 누나가 나타나면서 끝을 맺었다.


누나는 오자마자 대뜸 내게 콜라를 건네줬는데,
내가 '어디서 구해왔냐'고 묻기도 전에 말을 이어갔다.


"잔디밭에서 티벳사람 몇 명이 음식 하는데, 우리도 와서 같이 먹으래~"





"뭐..뭐라고??"


밥을 준다는 그 한마디에,
간만에 떠올랐던 추억 속 옛 사람들은 다시금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갔고.

나는 겉으로는 "에이~ 근데 먹으랬다고 또 넙죽 먹기도 그렇잖아~" 라며 흥분을 가라앉혔지만,
내 몸은 이미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누나와 함께 다시 잔디밭으로 돌아가기 바빴다.




잔디밭에서는 티벳 남자 몇 명이 둘러앉아 취사를 하고 있었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닭볶음탕과 비슷한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음식은 예상외로 꽤 맛있어서,
그들이 예의상 "좀 더 드세요." 라고 한마디 할라치면,
나는 단 한 번의 거절도 없이 "아이고 잘 먹겠습니다~" 을 외쳐대며 그릇으로 고기를 더 옮겨댔다.





어찌되었건,
먹으면서 얘기를 나눠보니,
음식을 덜어주던 티벳 청년은,
대학에서 불교를 전공하고 있는데 나중에 승려가 되고 싶단다.

심지어 그는 승려가 된 후,
티벳독립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까지 계획해놓고,
그 때를 위해 착실히 준비하고 있단다.



'난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지?'

녀석의 얘기를 들으니,
명확한 목표를 향해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녀석과 달리,
지금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내 모습이 상반되게 다가왔다.

내가 이렇게 인도를 떠돌고 있는 시간에도,
한국에 계신 우리 멋쟁이 글로벌 리더 인재님들은,
영어 공부하랴, 자격증 따랴, 저마다 바쁘게 살고 있을 텐데 말이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과...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까지...
닭고기를 씹는 동안 여러 가지 잡념들이 내 머리속을 휘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