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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기/India

인도여행 110 -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짜이 한잔을 들이키며 숙소에서 하루를 마감하던 무렵,
갑자기 가방을 정리하던 누나가 조용히 읇조렸다.


"라..라면이다.."


알고보니 네팔 트래킹 때 먹고 남은 라면이 배낭안에 숨어있던 건데,

배낭안에서 얼마나 눌려 있었는지,
차라리 생라면으로 뿌셔먹는게 더 나을 만큼 상태가 엉망이었지만,

뚝바와 뗌뚝을 질리도록 먹어대던 이 상황에서,
그깟 부서진 면발 쯤은 우리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Good Job~!'

나는 라면을 발견한 누나에게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붙이며,
라면은 내가 직접 끓이겠다고 했고,


냉큼 숙소 주인장에게 찾아가,
잠시 동안 주방을 쓸 수 있도록 양해를 구해놓은 뒤,

라면과 함께 먹을 수 있는 간단한 반찬이나 간식을 사기위해 근처 마트로 달려갔다.




그런데 막상 마트에 가보니,
딱히 반찬거리로 살만 한 것이 없었고,
그냥 생수와 세면도구 정도만 사야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상당히 앳되보이는 한국 남녀 몇 쌍이 가게로 들어왔는데,
기억을 되짚어보니 예전에 맥간 시내를 떼거지로 몰려다니는 모습을 몇 번 본 것 같기도 했다.

헌데, 그 중 몇 명은 이미 술에 꽤 취한 듯, 가게안에서 큰 목소리로 떠들어 대기 시작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각종 술과 안주들을 마치 사재기라도 한 듯, 한 보따리씩 들고 있었다.



아니, 이건 무슨 알콜 원정대인가? ㅡ.ㅡ;


밤이라도 꼴딱 셀 작정인지,
맥간에 Bar라도 하나 차릴 심산인지...

어쨌거나,
당최 정체를 가늠하기 힘든 그들이 궁금했던 나는,
먼저 다가가서 반갑게 인사를 나눠봤다.
(혹시 알아? 맥주 한병이라도 나눠줄지...;;;)


"안녕하세요~ 단체로 여행오셨나봐요?"


"아, 저흰 여기 봉사활동 때문에 왔어요~"


.
.
.


..으응??


봉사활동??



행색은 웬만한 관광객보다 더 관광객처럼 보이던 사람들이,
봉사활동을 하러 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약간 뜬금없긴 했다.

대학생 단기 봉사활동을 하러 왔다는데,
이건 어째 유명 관광지에 삼삼오오 모여 사진이나 찍고,
저녁이면 양 손에 맥주를 한아름 안고 숙소로 돌아가는 모습을 더 자주 보여주니 말이다.


문득 앞으로 그들의 이력서 한 귀퉁이에 들어갈,
'○○주최 해외 봉사단 활동 참여' 라는 문구를 떠올려보자니,
아무래도 아직까지 세상에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너무나 많은 것만 같다..


뭐,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봉사활동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체계적인 알콜 소비를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 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확실해 보였다.



어쨌거나,
그들에게 간단히 응원의 메세지를 전해주고,
나는 곧장 숙소로 돌아가 라면 끓이기에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요리를 마치고,
방 안에서 차분한 음악을 틀어놓은 채,
둘이서 도란도란 모여앉아 라면을 먹으니,

그 어떤 때보다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그러고보면,
언제부턴가 그랬다.

여행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일상을 피해 떠난 여행이, 오히려 점점 하나의 일상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언제부턴가 잠은 침낭위에서 자는 게 가장 푹신했고,
양변기보다는 좌변기가 더 편안해졌으며,
커피보다는 짜이가 더 입에 맞게 됐다.



그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뜻인지,
내일이면 맥간을 떠나 델리으로 갈 시간 다가왔고,
이제 델리에서 비행기만 타면 여행도 마무리 될 것이다.


라면을 먹으면서 지금까지의 여행을 돌이켜보니,
나는 참 많은 사람을 만났었다.


뭄바이에서의 처음으로 만났던 한국인 남자녀석.
우다이뿌르 숙소 사람들.
라자스탄을 함께 다녔던 멤버들.
'오르차' 누님들과 Mr.유.
순수한 영혼 '용'과 소방관 '마크'.
그리고 트래킹을 함께했던 녀석들까지.

이들 중 이제 인도에 남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이런저런 하다가,
문득 누나가 내게 물었다.


"여행 끝나기전에 이런 사람들을 또 만날 수 있을까?"

"글쎄, 1~2명 쯤은 더 만나지 않을까?"




정말 또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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