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행 야간버스 안은 생각보다 꽤 쌀쌀하다.
변변한 쟈켓 하나 없던 나는 그저 최대한 몸을 웅크린 채,
버스가 델리에 도착하기만을 두손 모아 기도할 뿐이었는데,
이 모습이 얼마나 불쌍해 보였는지,
옆에 있던 누나는 자신이 두루고 있던 숄을 내게 건네줬고,
덕분에 나는 입이 돌아가려는 극한 상황에서도 생명의 불씨를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고보면,
서로 참 지독한 인연이다.
처음 아메다바드 기차역에서 우연히 만난 후,
중간에 헤어졌음에도 다시 푸쉬카르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났고,
이제는 서로 같은 항공사로 인도에 온 것을 알고,
기어이 귀국 날짜와 시간까지 맞춰서 돌아가는 비행기까지 함께 타고 가게 됐다.
아... 이 얼마나 고무 타이어 마냥 질긴 인연인가.
새벽 찬 바람이 불어댈 무렵,
우리는 드디어 마지막 도시인 델리에 도착했다.
사실 그 동안 여러 여행자들로부터
'델리'에 대한 이런저런 경험담을 주워들을 수 있었는데,
"델리에 가면 삐끼를 조심해!" "거기는 사기꾼의 천국이야!!" "절대~ 방심하지 말라고!!!" |
뭐, 들은 얘기 중에 그닥 긍정적인 얘기는 눈꼽만큼도 없었다.
덕분에 나는 델리로 출발할 때부터,
남들이 전혀 신경도 안쓸 상황에도 괜시리 긴장하며,
주변을 경계심 어린 눈초리로 주시하곤 했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그들의 말과는 달리 여느 도시와 별 차이가 없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인도를 처음 접하는 곳이 '델리'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물론 그런점에서,
내겐 여전히 '첸나이'가 가장 충격적인 도시로 남아있다. (하아...)
어쨌거나 인도 생활 2달만에,
웬만한 길거리 삐끼보다 더 영악해져버린 우리에게는,
'그 충격적이라는 델리'가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그저 5루피짜리 짜이 한잔을 입에 툭 털어넣은 뒤,
주변을 어슬렁 거리며 빠하르간지로 가는 릭샤를 찾아볼 뿐이었다
"엇! 안녕하세요~"
그때 누군가 뒤에서 우리를 향해 인사를 했는데,
뒤를 돌아보니 맥간에서 일면식만 있던 한국인 남자 2명이 배낭을 메고 서 있다.
그들도 방금전에 도착했는지 빠하르간지로 가려고 했고,
나는 재빨리 머릿속으로 40루피를 4로 나눠본 후,
'n분의 1공식' 을 되뇌이며 그들에게 미소로 화답했다.
"그럼 저희랑 같이 가시죠! ^_^"
때마침 길바닥 한 쪽 구석에,
고개를 숙인 채 잠을 자고 있는 릭샤꾼이 보여서,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봤지만,
얼마나 잠에 취했는지 정신을 못차린다.
큰 목소리로 그의 귀에 몇 번을 더 외쳐대자,
릭샤꾼은 시뻘겋게 충혈된 눈을 천천히 껌뻑이며 우리를 쳐다봤는데,
이리저리 풀어 헤쳐져 떡진 머리.
들판 위에 잡초처럼 여기저기 자라있는 수염.
반쯤 풀린 눈과 살짝 벌린 입 사이로 보이는 누런 이.
나는 나름 첫인상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봤지만,
아니, 이건 무슨 약물중독 근절 캠페인 영상도 아니고,
가히 초절정 폐인의 모습을 눈 앞에서 지켜보니,
과연 그가 운전은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릭샤 요금도 예상했던 금액의 2배(60루피)를 불러대니,
나는 결국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 수밖에 없었고,
입맛을 다시며 다른 릭샤꾼을 찾기 위해 발걸음을 돌리려하자,
릭샤꾼은 다급히 내 어깨를 잡으며 외쳤다.
"헤이! 30루피, 오케이?"
"....오~~ 케이!"
조금 전에 걱정은 이미 기억에서 지워버린 우리들은,
이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잽싸게 릭샤에 올라탔고,
그나마도 자리가 부족한 관계로 나는 릭샤꾼 의자 옆에 끼어 앉았다.
찬 바람을 온 몸으로 느끼며,
릭샤는 델리 시내를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고,
별 생각없이 릭샤 운전석을 구경하던 나는,
계기판 옆에 달린 빨간색 버튼 하나를 발견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이지....
릭샤꾼에게 물어보자, 일단 한번 눌러보라는데,
시키는 대로 해보니, 릭샤 어디선가 조그맣게 "삐~ 삐~" 거리는 클랙션 소리가 난다.
'우와~~~'
호기심에 가득찼던 나는,
결국 리듬 본능을 참지 못하고,
'337박수 리듬'과 '대한민국 응원구호 박자'에 맞춰 버튼을 눌러댔는데,
때아닌 월드컵 응원 분위기에,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대~한민국!" 을 조용히 읊조렸고,
릭샤꾼도 신났는지 리듬에 맞춰 고개를 연신 끄덕끄덕 거린다.
'얼씨구나-'
그렇게 우리는, (
한적한 델리 시외를 지나 빠하르간지로 향했다.
거참, 상쾌한 하루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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