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가기/India

인도여행 109 - 티벳의 미래


맥간에서의 일상은 참으로 단조롭다.
아침에 일어나면 누나는 뭔가에 홀린 듯이 코라를 한 바퀴 돌기 시작했고,

나는 숙소 옥상으로 터벅터벅 올라가,
텅 빈 하늘을 바라보며 멍을 때리는 게 하루의 시작이었다.


이 행위를 마치고 나면,
우리는 근처 골목길에 있는 카페로 들어가,
밀크티 2잔과 갓 구운 토스트를 먹으면서,
'대체 오늘 점심은 뭘 먹어야 할 것인가' 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곤 했다.




"기념품이나 사러 갈까?"

아침식사를 하면서 점식식사 메뉴를 고를 정도로 할 일이 없던 우리에게,
지인들에게 줄 기념품이나 사러가자는 누나의 말은,
사실 꽤 창의적인 소일거리로 다가왔다.


솔직히 한국에서도 '오프라인 쇼핑' 이라면,
갖은 핑계를 대가며 안 가려고 기피했던 나로서는,
이번 쇼핑도 그닥 끌리지는 않았지만,

뭐, 구경삼아 한번 따라가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길을 따라 늘어선 노점상을 이리저리 돌아다녔고,

친오빠에게 줄 기념품을 사겠다던 누나는,
어느 순간부터 여성용 팔찌나 귀걸이 등을 몸에 걸쳐보는 시간만 늘어갔다.


"이거 괜찮지?"


장장 2시간이 지나도록, 
이것저것 몸에 장식을 하던 누나는,


결국 쇼핑 막판 5분전에야, 선물용으로 손바닥만한 체스판 하나를 골랐는데,

아니, 이거 무슨 달랑 체스판 하나 살 거면서,
왜 2시간 동안 이곳저곳을 둘러봤는지는 남자로서 끝내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뭐, 어쨌거나,
이렇게 해외여행을 와서도 친오빠에게 선물을 사 줄 생각도 하고....


그 마음 씀씀이 하나만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줄만 한데,

나중에 전해들은 바로는,
한국에 돌아가서 오빠에게 체스판을 선물로 주자,


"그냥 면세점에서 담배나 하나 사오지, 뭐 이런 쓰잘떼기 없는 걸 사와!?"

라는 꾸지람만 듣고,
체스판은 포장 한번 뜯기지 않은 채 집안 창고에 영원히 봉인되었다는 후문이다.




부질없는 쇼핑을 마치고,
다시 맥간의 중심가로 돌아오자,
무슨 일인지 길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동네 꼬마 아이부터 할아버지, 승려, 청년들까지,
맥간 주민의 대부분이 총 출동한 것처럼 보였는데,


여행을 하면서 사람들이 시내에 모이는 건 몇 번 봐왔지만,
카트만두의 군중 시위나 아메다바드의 이슬람 축제 행렬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티벳사람 몇 명은 건물 위로 올라가,
'NO LOSAR' 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걸고,
옆에는 중국 정치인의 모형을 불태우기 시작했는데,

영문을 몰랐던 나는,
그저 주변 사람을 붙잡고 '대체 LOSAR의 뜻이 뭐냐' 고 물어보기 바빴다.



"티벳어로 '새해'라는 뜻이에요. ㅡ.ㅡ;"

어리버리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내가 딱했는지, 한 사람이 귀띔을 해줬는데,
그제서야 나는 'NO LOSAR' 의 의미를 어느 정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
뭐랄까 '티벳 문제 해결 없이는 새해는 없다' 라는 뜻인가?




솔직히 이 광경을 보면서,
나는 내심 반가웠다.


사실 맥간에서 머무는 동안 내가 본 티벳 사람들은,
현실에 너무나 잘 적응해버린 사람들 같았다.

독립에 관한 이야기는 그저 박물관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고,
길거리에서 만난 대부분의 티벳 젊은이들은 완벽히 다른 나라 문화에 동화된 것처럼 보였다.


마치 동물원에 갇힌 호랑이처럼,
어느 순간부터 탈출은 커녕, 사육사가 주는 먹이에만 만족하는 녀석들 같았다.



이렇게 무관심한 사람들을 지켜보면,
가끔씩 일제강점기를 지낸 우리나라와 오버랩 되며 섬뜩함을 느끼곤 했는데,

만약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하지 못하고 60년의 세월이 지났다면,
분명 지금의 티벳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런 이유로,
지금 이 사람들의 적극적인 모습은 내게 의미 있게 다가왔고,

비록 겉으로는 독립에 관심이 없어보이던 사람들도
이토록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꽤 인상적이었다.




광장에는 어느덧 티벳사람들 외에도,
외국 여행자와 지역 신문기자들도 모여들기 시작했고,

이번 활동은,
한 때나마 티벳이라는 나라가 존재했음을,
그리고 그들은 아직도 독립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자리에 있던 모두에게 각인시켜 줬을 것이다.




그리고 이 경험은,
내게 묘한 도전 의식을 심어줬는데,

여행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가면,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해봐야 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