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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기/India

인도여행 4 - 숙소가는길


새벽에 느꼈던 충격과 공포로부터 멘탈의 심각한 타격을 입었던 나는,
기차역에서 특이한 광경들을 눈에 새겨가며 밤을 꼬박 지샜다.

다행히 기차예매를 위해 '타임테이블'[각주:1] 이라는 열차시간표를 사러 잠시 상점에 들렸다 나오니, 금세 해가 떴다.

아침이 다가오자 어느새 한밤중에 시체처럼 널려있던 사람들은 모두 사라지고,
거리에는 이리저리 걸어다니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뭔가 활기차진 분위기에 긴장이 약간 풀렸고,
그 동안 간직해왔던 수분도 분출할 겸. 화장실을 가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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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문 앞에서는 친절하게도 어느 할머니 한분께서 책상에 앉아 요금을 받고 계셨다^^[각주:2]



큰 용무인지, 작은 용무인지를, 무슨 출입국 심사 하는 것마냥 할머니에게 보고하는 것 같아 꺼려지긴 했는데,

생각해보니, 내가 무슨 무단으로 핵 폐기물을 버리는 것도 아니고,

내 몸에서 방사능이 분출되는 것도 아닌데..

요금을 받아?.....


나의 이런 쓰잘떼기없는 자존심은 곧 '방광을 틀어막는 기적'을 보여주었고,
몇시간 동안 공항에서 대기하고 잠도 못 잔 까닭에,
구경이고 자시고, 기차표 예매를 마치자마자 숙소를 잡으러 '에그모어 역' 근처로 향했다.





이때도 전철을 이용했는데,
새벽에 한번 타봤으니 이제 문 열린채로 가는건 그저 웃지요 ^^
헌데 새벽부터 전철을 타봤지만, 어째 계속 티켓을 구매하고 타도 당최 아무도 검사를 하지 않았다.

잠시나마, 누군가는 검사를 할 거라는 희망을 품어봤지만,

전철을 타면서 주도 면밀하게 정황을 파악해본 결과, 현실은 역시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이곳에는 그저 티켓을 파는 사람만 있을뿐. 검사하는 구간도, 장치도, 사람도 없다.
고로 공짜로 올라타도 아무런 제재조치가 없다 ㅡ_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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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여기 뭐야 몰라 무서워!! 



양심전철이야 뭐야 이거???


몰래카메라야?? 나중에 돈 낸 사람은 깜짝 이벤트로 냉장고 주는 거야?? 뭐야???



.....어쨋거나, 나는 고작 4루피에 양심을 팔지말자고 다짐하며,
본격적으로 숙소를 찾아보기로 했다.





가져간 가이드 북 지도를 참고하며 시내를 걸어다니는데,
거리 곳곳에는 매연이 어찌나 심한지 쓰고있던 비니모자를 벗어 코와 입주위를 가리면서 다녀야 했다.

이쯤에서 다시금 거리에서 펼쳐지는 이색 볼거리의 향연.
한 낮에 노상방뇨는 기본이요. 노상방뇨를 하면서도 그걸 쳐다보는 내 얼굴을 또 빤히 쳐다본다.
더욱이 마주치는 사람마다 "할로~ 재패니즈?" 라는 인사말은 이제 서서히 내 국가 정체성의 혼란을 주기에 충분했다.


.........휴.




간신히 도시 구석진 곳에 숙소를 잡고나서야,
조금씩 뭔가 안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간만에 숙소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니,
이 때쯤 밀려드는 한국 생각.. 사람 생각.. 그리고 복잡한 문제들..
몸도 피곤한 상태에서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처음으로 나만의 공간에 혼자 있게되니 더 그런 것 같다.


나는 이곳에 왜 왔을까?
그 많은 좋은 곳 내버려두고
하필이면 왜 인도 남쪽에 이름모를 게스트하우스 방 안에서
난 뭘 하고자 온걸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직까지는 답이 생각나질 않았다.

일단 그냥 퍼질러 자야겠다는 생각뿐.





  1. '타임테이블'은 말그대로 인도 전역의 기차노선과 시간표 등이 나온 책이다. 인도돈으로 35루피를 주고 사야되는 책이긴 하지만, 분명 35루피 이상의 값어치가 있다. (물론, 운이 좋다면 다른 여행자에게 공짜로 얻을 수 있는 확률이 있다.) 인도에서 기차를 예매하려면 인터넷을 이용하거나 외국인 전용 예약창구에서 예매를 해야 하는데, 이때 '타임테이블'을 참고해서 정해진 양식을 미리 작성해서 제출하면 예약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첫차와 막차를 알 수 있기에 연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열차를 골라 예약 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게다가 Km당 대략적인 요금도 나와있어서 여행사에서 예매를 대행해줄때 수수료로 얼마를 가져가는지도 대충 알 수 있다. -_-b 짧은 일정으로 인도를 여행할 경우에는 '타임테이블'을 가지고 대략적인 일정을 짜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본문으로]
  2. 특히 기차역에 있는 화장실은 요금을 받는다. 그래봤자 5루피 정도지만. 한국 공공화장실을 생각한다면 거시기(?)하다. 물론 돈내고 쓰는 곳이라고 시설이 좋을거란 기대는 일찌감치 버리는 게 좋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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