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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기/India

인도여행 6 - 기차안에서의 26시간


뭄바이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드디어... 가는구나.

왠지모를 설레임에...
한쪽다리를 꼬고앉아, 창 밖을 바라보며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찾는 눈빛으로
괜시리 허세근성을 떨어본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끝도 없는 평원이다.
그리고 기차안으로 보이는 풍경은 죄다 인도인이다. -_-
조금은 홀로 외롭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지껏 그 흔다디 흔하다는 서양인 여행자 한명 보지못한 내 심정을 누가 알리오.


아직까지는 낯선땅에 대한 견제심 때문인지,
외국인에게 선뜻 먼저 말을 걸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그런 우려도 잠시.
기차가 출발한지 몇 분 지나지 않아, 나의 지나친 오지랖 스킬은
어느새 인도인들과 여행에 대해 이런저런 농담을 주고 받는 상황으로 만들어 주었다.
(물론 인도인들의 오지랖 스킬도 만만치 않지만..)




뭄바이까지 가려면 26시간을 꼼짝없이 기차에서 보내야 한다.
말이 26시간이지....
정말 친한 친구와 가도 아무리 서로 떠들어도 더 이상 할 얘기꺼리도 없어지는 시간이다.
뭐랄까.. 시간과 공간의 방..인가..




이런 내게도 사람복은 있는건지,
기차안에서 만난 인도인이 연신 먹을 것을 사줘서,
배고픈 줄은 모르고 다닐 수 있었다.
도시락에 있는 밥을 신문지에 듬뿍 덜어서 주질 않나.
통에 들어 있던 짜파티, 지나가는 상인이 파는 코코아 즙.

이건 마치 나를 사육하려는 듯이 꾸준히 먹여댔다. -_-




기차를 타다보면 별에별 장사꾼들과 구걸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는데,
기차안에서 경험한 몇 가지 특이했던 유형은 아래와 같다.


1. 여자들이 1명 혹은 떼꺼지로 몰려다닌다. 그리고 앞에와서 다짜고짜 박수를 크게 2번 친다.

그럼... 돈을 줘야 된다 -_-;
왜 줘야 하는지도 모르는체...
혹시나 해서 좀 지켜보니 현지인들도 60%의 확률로 다들 돈을 준다.
나중에서야 알았는데, 그 사람들은 여장남자라고 한다.


..............홀리..샷.. -_-



2. 꼬마 2명이 내게 가까이 와서는 연신 북을 쳐대며 흥겹게 노래를 불러제낀다.

아이고 나도 모르게 흥이나서 자진모리 스텝을 밟아보려는 찰나..
그럼... 돈을 줘야 된다 -_-;
역시나 왜 줘야 하는지도 모르는체... 뭐, 음악을 들려줬으니 돈을 줘야 한다는 거겠지.



3. 어떤 사람이 갑자기 우리가 앉아있는 곳의 바닥을 쓸기 시작한다.
됐다고~ 필요없다며~ 떼를 써봐도~
..... 돈을 줘야 된다 -_-;
또 다시 이유를 모르는 체... 쓸지말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청소한다음에 돈을 달라고 한다.




이해할 수 없는 한낮의 사건들이 지나가자,
어느덧 저녁시간이 되었고..
기차안에서는 저녁식사 예약을 받고 있었다.
나도 한번 먹어보려고 신청을 했었는데
막상 나온걸 보니.... 커리 2개와 밥만 달랑 가져다 줄 뿐이었다.

....그런데


응??

수저가 없다??




뭐, 젓가락은 바라지도 않았지만, 하다못해 뭐 포크라던가.. 그런거 말이야.



당황스러움을 감추며 옆자리에 앉은 인도인에게 어떻게 먹어야 되냐고 물어보니,
손으로 먹으면 된단다.

휴... 인도에 오니까 아주그냥 손이 쉴 틈을 안주는구나.

별 수 있나.
김장 버무리듯이 신나게 손으로 밥과 커리를 비벼제꼈다.
아, 뜨거운 국물의 느낌이 오감을 통해 전해지는 이 상황.


난 KBS 도전 지구탐험대에 출현한거 마냥,
(현지 문화를 이해하려 한다는....나의 노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비빈 밥을 한 움큼 쥐어들고 와작와작 씹어먹으며 옆자리 인도인을 향해 씩~ 웃어 보이자
그도 웃음으로 화답해줬다.
아~ 이 훈훈한 분위기..




하지만 그리고 잠시 후
그 인도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주머니에서 숟가락을 꺼낸 후 식사를 했다.



..휴우. 나 이거 참..







아주그냥 한국가면 책이라도 하나 내야겠어^^




손으로 밥을 싹싹비벼먹고
상콤하게 기차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나니,
다시 아침이 밝아왔다.

창 밖에는 어제와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무수한 산맥과 절벽들..
그리고 알 수 없는 봉우리들..

불과 하루만에 배경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니,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믿을 수 없는 나라다.



열차가 종착역에 가까워질수록,
새로운 곳에 대한 설레임이 커질수록.
나는 많은 사람들과 작별을 해야했다.


이름모를 인도아저씨와 꼬마아이...
인도에서도 수저를 자주 쓴다는 것을 알려준 청년...
머리에 예쁘게 꽃단장하고 친오빠와 집으로 가던 인도여인...


종착역까지 가는 사람은 나 뿐이었기에,
하나 둘씩 주변에 빈 자리가 늘어갈때마다
왠지 모를 공허함과 아쉬움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 인물 사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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