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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기/India

인도여행 13 - 사고


밤기차를 타고 한 숨 자고 일어나니,
이른 새벽무렵 '아메다바드'에 도착했다.

역밖으로 나오는데 내 옆자리에 같이 타고 왔던 인도인이 말을 걸었다.

"이 밤중에 어디 쉴 때도 없고, 밖은 위험하니까 내 집에서 좀 쉬었다 가."

"아, 고맙지만 그냥 여기서 동 틀때까지 기다리지 뭐."

"그러지말고 그냥 와~ 기차역에서 엄청 가까워."

이러쿵 저러쿵.. 몇 번 얘기가 오간 후에..
인도인에게 설득당한 나는 그가 잡은 오토릭샤에 올라타고 그의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릭샤를 타고 한 30~40여분은 달린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보니 시내에서 상당히 떨어진 것 같았고,
너무 멀지 않냐는 내 물음에 그 인도인은 거의 다 왔다고만 하고...
뭔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이윽고 상당히 외진 곳 어느 빌리지에 릭샤가 세워지고,
그 인도인은 나를 옥상에있는 집으로 데려가며 짐을 풀고 있으라고 하곤,
자신은 릭샤요금을 지불하고 돌아오겠다고 했다.

그가 사라진 사이 집안을 잠시 둘러보니,
이건 집이라기 보다는 창고에 가까웠다.
벽에는 칼들이 걸려있고, 일반적인 가구들은 없고
눈에 띈 것은 쇠사슬..자전거 체인..그리고 폐지와 온갖 쓰레기들이 널부러져 있는 것 뿐이었다.
맨바닥에는 침낭이 4개가 있었는데 코고는 소리와 살짝 얼굴이 보이는 걸로보아 남자 4명이었다.

순간 뭔가 상당히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을 조용히 열고 계단을 통해 밖을 내려다 보니,
릭샤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고, 그 인도인도 보이지 않았다.




기회다 싶어 난 재빨리 계단을 내려왔고,
그 인도인이 다시 쫓아올 수도 있었기 때문에,
어디를 향해 가는지도 모른채 똑같은 방향으로 계속 걸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해도 이해가 안되는 건, 그때 어디서 그런 여유가 있었는지..
긴급한 와중에도 사진기를 꺼내들고 그 건물과 거리들을 찍으며 왔다.




거리에는 아무도 없고, 인도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개짖는 소리 한번 안 들렸다.
걷고 있다한들, 어디로 가야할 지 몰랐고..
지도를 편다한들, 이 곳이 어딘지를 알 방법도 없었다.

어쨋거나 다시 기차역까지 갈 생각에 막막했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무조건 큰 도로를 찾아 걷기를 몇십분.
드디어 새벽부터 상품을 정리하는 어느 음식점을 찾았고,
영어가 안 통하는 그에게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근처에 버스정류장을 물어보았다.




버스정류장에 왔지만 아직 첫 차를 타려면 몇 십분은 더 기다려야 됐다.
이리저리 걷느라 몸이 피곤해서 오히려 머리속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잠시 후, 첫 차 시간이 가까워오자 어느 인도 청년이 정류소에 다가왔다.
원래 기차역을 가는 버스를 물어보기 위해 말을 걸었는데,
버스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유명 관광지를 가느니, 차라리 근처에 호수가 있는데 그 곳이 더 괜찮을 거 같다며 청년이 추천해주었다.

기차역에 도착한 후에는 친절하게도 버스에서 내려서 직접 호수까지 가는 오토릭샤를 잡아주었다.




호수에 도착했지만 아직 해가 뜨지 않았다. 주변에는 새벽 운동을 나온 인도인들이 꽤 많았다.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호수 주변 시설도 상당히 깨끗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숨도 돌릴겸 여행가방을 등에 둘러멘채로 천천히 호수를 한바퀴 돌아보았다.

그러고보니 새벽부터 정신이 없었다.
잠에서 깨자마자 숨가쁘게 달려온 느낌이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난 계획에도 없던 호수를 걷고 있다.




잠시 호수 가장자리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그러고보면 쉬었다 가라는 그의 말이 진실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여행중에 일어나는 '사고'는 확률싸움이다.
일어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어느쪽을 선택하던지는 내 자유지만, 그 책임 또한 내가 져야함은 명심해야 할 점이다.

그런점에서 오늘 새벽은 '사고'가 날만한 확률이 충분히 커보였고, 나로서는 황급히 집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호수를 한바퀴 도는 동안 날이 밝아왔다.
그리고 그 사이에 만난 인도인들은 또 다시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이름이 뭐요?"
"어느 나라에서 왔지?"
"
여기서 뭐하는 거요?"
"악수나 한번 합시다."
"사진 한번만 찍어줄래요?"
"같이 운동이나 할래요?"

다른때 같으면 지겨울 법도 했지만,
새벽의 일 때문인지 오히려 그들을 만나는 동안 꿀꿀했던 기분이 다시 괜찮아졌다.
휴, 나도 모르게 한숨섞인 웃음이 나왔다.
사람때문에 새벽부터 그렇게 스트레스받고, 다시 사람들 때문에 기분이 좋다니...

...아무튼 모든 것은 사람때문이다. 아직은 낯선 땅 인도에서 다시 느끼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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