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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기/India

인도여행 49 - 새벽의 오르차


다행히 순조롭게(?) 아그라 포트역에 도착해서 제시간에 열차를 탔다.

목적지인 '오르차'는 사실 상당히 작은 시골마을이라,
그곳에 가려면 일단 옆에 조금 더 큰 마을인 '잔시'를 통해서 가야만한다.


뭐, 어쨋거나
기차가 '잔시' 에 도착할때까지 푹~ 잠이나 실컷 잘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하루하루가 임팩트있게 지나가서인지, 몸도 마음도 피곤했고.
역시나 열차에 자리를 잡자마자 침낭을 펼친 후, 마취된 듯이 잠에 골아떨어졌다.




그리고
잠깐 눈을 붙인 것 같은데.

갑자기 누나가 날 급하게 흔들어 깨웠다.


"여기 우리 내려야 하는 곳 아니야?"




아니 벌써?

순간 벌떡 일어나서 창문밖에 이정표를 살펴보니

'JANSI'


What the hell..

잠깐 눈감고 있었던 거 같은데 벌써 '잔시'라니.
어지간히 피곤했었나 보다.

인도 열차는 중간역에서 잠깐동안밖에 정차를 안하기 때문에,
정신을 차릴새도 없이, 침낭도 정리 못하고,
신발은 커녕,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주렁주렁 들고,
허겁지겁 전방낙법을 이용하여 열차에서 뛰어내렸다.


뜬금없이 잠에서 깨자마자 이게 뭐하는 짓인지..
멍하니 역내 의자에 앉아 침낭을 말아넣으며 시계를 봤는데,
아직 시간도 새벽이고 날씨도 꽤 쌀쌀하다.


여기서 오르차로 가려면 또 다시 버스나 릭샤를 타고 가야되서,
처음엔 까짓꺼 비싼 릭샤대신 대기실에서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저렴한 버스를 타고 가려 했지만,

배고픔과 졸음앞에서 우리는 너무나 약한 존재들이었고,
결국 역 앞에 있던 릭샤꾼과 흥정을 한 후, 황급히 오르차로 향했다.




어두운 오솔길에는 오로지 우리 릭샤만 달리고 있었다,
게다가 주위에는 건물은 커녕, 웬만한 불빛하나 보이지 않았다.

길이 뻥 뚫려있어서,
릭샤꾼은 간만에 신난듯이 악셀을 마구잡이로 밟아댔는데,
덕분에 아직도 꿈과 현실사이에서 헤메고 있던 우리는, 칼날같은 바람을 얼굴 정면으로 받아내야 했다.


그렇게 흐르던 콧물조차 얼어붙을 무렵.
한 30분정도 달렸나, 갑자기 릭샤는 웬 작은 집들이 모여있는 곳에 멈춰섰는데,

릭샤꾼의 말로는 이곳이 오르차란다.





"으응?"

그런데 아직 해가 완전히 뜨지 않아서인지,
어찌된게 길거리에는 사람 한명 보이지 않았고, 동네 자체가 죽어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릭샤가 떠난후,
털털거리던 엔진소리마저 사라지자,
고요한 이 동네에서 소리를 내고 있는 건 우리 둘 밖에 없었다.


어쨋거나 일단 숙소를 찾기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이거 뭐 주위에 사람이 한명이라도 보여야 물어보던가 할텐데, 사람은 커녕 불이 켜진 건물이 하나도 없었다.
결국 가이드북 지도에 나와있는 게스트하우스를 대충 눈짐작으로 예상하고 다짜고짜 찾아가서 문을 두들겨 보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부시시한 얼굴로 주인이 나왔는데,
운 좋게도 게스트하우스는 맞지만 남은 방이 없단다.


'어쩌지..어쩌지..'

길잃은 어린양처럼 인적없는 오르차 시내를 거닐무렵.
저 멀리 두 사람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엇,
자세히 보니, 남자와 여자다!



심지어
가까이 다가가보니..



한국인이다!!!


머나먼 인도에서,
그것도 작은 시골 마을 오르차에서,
새벽 동틀무렵,길가에 사람하나 안보이다가,
겨우겨우 발견한 사람 2명이 한국인일 확률은 대체 얼만큼인지.


반가움에 냉큼 달려가 인사를 나눴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여자분이 오르차를 아침일찍 떠나서, 남자분이 마중을 나왔단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마땅히 갈곳도 없던 우리는 이 남자가 머물고 있는 숙소로 따라갔다.


"여기 주인장은 진짜 눈만 마주치면 공짜로 짜이[각주:1]를 줘요~ ㅋㅋㅋㅋ"

그 남자는 우릴 안내하며 자기가 머물고 있는 숙소의 장점을 쉴새없이 얘기해댔다.
사실, 순진하게 그 얘기를 믿지는 않았지만 별다른 선택이 없었다.


잠시후 커다란 예배당 같은 곳을 지나서 작은 골목길로 접어들자,
그가 말한 게스트하우스가 나왔다.

숙소에 도착하자,
우릴 이끈 그 청년은 주인장 방문을 두들기며 새 손님들 왔다고 말을 하니,
잠시후, 자다가 나온듯한 주인이 슬리퍼를 질질끌며 밖으로 나왔다.



사진출처 : 다음카페 '인도방랑기', 올린이 '관객2' http://cafe.daum.net/gabee/2rVR/1581


우리는 괜히 우리때문에 잠을 깨운 것 같아 왠지 미안하기도 해서 뻘쭘히 서 있는데..

주인은 충혈된 눈으로 우릴 쳐다보더니 대뜸 말했다.





"...짜이?"



ㅡ.ㅡ?;

'헐. 진짜 눈만 마주치면 짜이를 주는거야?.....;'


주인장의 뜬금없는 짜이드립에 소스라치게 놀란 우리가 그 청년을 쳐다보자,
그 청년은 '거봐, 내 말 맞지?' 라는 표정으로 주인에게 당당히 짜이 3잔을 요구했다.


결국 숙소에서 방 잡기도 전에,
짜이먼저 한잔 먹고 오르차에서의 하루를 시작하게 됐다.



사진출처 : kodia23.cafe24.com/bbs/zboard.ph...4f40f61a


  1. 홍차 우린물에 우유와 설탕을 넣어 만든 인도식 차.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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