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마음을 뒤로하고,
더르바르 광장을 더 둘러보았다.
수많은 사원 건물과 각종 탑들은
인도의 색채도 있고,
티벳의 색채도 있고,
뭐랄까. 전체적으로 두 문화의 완충지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잠시동안 건축물들을 보며 허세모드에 빠져들 무렵.
누나가 광장 바깥쪽으로 이어진 길로 가보자고 했다.
한동안 길을 따라 걷고 있는데,
주변의 모습은 조금전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길 옆에 얼기설기 지은 듯한 건물들과 오래된 나무 건축물에서 나는 냄새들은,
마치 슬럼가 같은 분귀기를 풍겼다.
갑자기 달라진 주변 모습에 약간 당황해 할 무렵,
내 시선은 어느 순간부터 한 건물에 집중되었다.
그것은 바로 평범한 주택이었는데,
내가 그곳을 주목한 이유는 다름아닌,
그 건물 아래쪽에 써있던 글씨 하나 때문이었다.
VIDEO GAME
지은지 50년은 넘어보이는 이 건물에서,
뜬금없이 VIDEO GAME 이라는 단어를 보니,
뭔가 상당히 언밸런스한 느낌이었다.
'대체 뭐하는 곳이길래...?'
주체할 수 없는 내 호기심은 이미 그 글씨 아래에 위치한 문으로 내 몸을 옮겨놓았고,
슬그머니 그 문턱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곳에는 대충 보면 일반 가정집 같아 보이는데,
한 켠에 뜬금없이 작은 오락기 2대가 놓여져 있었고,
몇명의 아이들이 거기서 '스트리트 파이터' 라는 대전게임을 하고 있었다.
어라, 요녀석들 봐라.. ㅡ_ㅡ ㅎㅎ
난데없이 출현한 나를 보자,
그 자리에 있던 아이들은 나를 경계하며 길을 텄고,
의도하진 않았지만,
이것은 마치 무협영화에서 상대 문파를 쓰러트리기 위해 찾아온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됐다.
이 모든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것은 마치...
인도로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이미 정해진 운명같았다.
잠시후,
그 중에서 가장 잘한다는 녀석과 게임을 시작했고,
언제 모여들었는지 주위에는 열댓명의 아이들이 우리를 둘러싼 채 구경을 하고있었다.
카트만두에서의 예상치 못한 스트리트 파이터 대전은 그렇게 막이 열렸다.
사실 나는 스트리트 파이터 손 놓은지 10년이 넘어가는 데다가,
이곳은 꼬마녀석의 홈구장과 같은 곳이기 때문에,
피 튀기는 박빙의 승부가 될 거라는 예상을 했었다.
그런데 피가 튀기는 커녕,
정말 허무하게 1판을 내줬고, 연이어 2번째 판도 깨졌다.
(심지어 3번째 판은 한대도 못 때리고 졌다 ^^)
옆에서 지켜보던 누나는 내게 힘을 주는 말을 건네주었는데,
"야~ 쫌, 잘 좀 해봐 ㅋㅋㅋㅋㅋㅋㅋㅋ"
"아놔, 이 어린노무자슥이 얍삽한 기술만 써서 그래 ㅡ.ㅡ"
"변명하지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
.
.
아주그냥 참 핵심을 찔러주는 응원, 고마워 누나 ^_^
총 4번의 맞대결끝에,
나는 4전 4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게 되었고,
꼬마녀석의 얍삽한 기술과 1P의 조작버튼이 잘 안 눌러졌다는 사실을 강하게 어필했지만,
아무도 내 말에 귀 기울여 주지 않았다.
주위에 있던 꼬마녀석들은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축하했고,
나는 황급히 그곳을 빠져나와 다시 더르바르 광장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이녀석.
다음엔 한국에서 붙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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