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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기/India

인도여행 76 - (네팔) 포카라 그리고 재회

몸 상태는 여전히 좋지 않았지만,
음식을 최소량만 먹으면 그나마 복통이 심하지는 않아서 버틸만은 했다.

무엇보다도 언제까지 카트만두에서 보낼 수는 없었다.

네팔에 온 이상 히말라야 트래킹도 해보려고 했는데,
비자만료 기간이 있기 때문에 되도록 빨리 '포카라' 라는 도시로 이동을 해야 했다.


그리하여,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부랴부랴 짐을 챙긴 후,
쌀쌀한 공기를 들이키며 숙소 근처 정류장에서 포카라행 버스를 탔다.




출발한지 몇분 지나지않아,
창밖을 내다보는것도 지겨워졌고,
의자를 뒤로 제낀 후 한숨 자려고 했는데,

아무리 손잡이 주위를 찾아봐도 '버튼' 이 보이질 않았다.


의자가 처음부터 제껴지는 의자가 아니라면 상관없겠지만,
다른 사람들을 보니 죄다 의자를 뒤로 제끼고 있는 걸 보니 일단 의자는 제껴지는게 분명했다.

나는 옆에 앉은 누나와 함께,
어렸을적 구몬학습을 통해 단련했던 창의력까지 동원해가며 버튼의 위치를 찾아봤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


남은 선택은 2가지였다.
이대로 90도의 의자 각도를 유지한 채 포카라까지 8시간을 갈 것이냐,
아니면 잠자는 옆 현지인을 깨워서 물어볼 것이냐.....

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손으로 옆 사람을 툭툭 쳐서 깨운 후,
손짓 발짓을 해가며 의자좀 제껴달라고 부탁을 했다.


사실 네팔 사람이 한 방법은 간단했다.
그가 내 의자 앞에 달린 수도관 밸브 같은 것을 오른쪽으로 몇바퀴 돌리자,
마치 갈매기가 우는 듯 '끼륵끼륵~' 소리와 함께 의자가 뒤로 조금씩 뒤로 넘어갔다.


전설로만 들어봤던 'ALL 수동 시스템'을 직접 눈앞에서 확인하니,
나는 반사적으로 엄지손가락을 슬그머니 세우며 감탄사를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


"Great~!"




기나긴 버스이동 끝에 도착한 포카라는 상당히 한적했다.

히말라야 트래킹으로 유명한 곳이기에,
내심 '포카라' 하면 눈덮인 산과 대자연의 향기가 여기저기서 풍겨나오는...
뭐, 그런 곳일꺼라 상상을 하곤 했다.


하지만,
버스에서 내린 후 포카라를 처음 본 느낌은,
'일반적인 작은 마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다.


"뭐, 별거 없네."

약간은 실망한 표정으로,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가 몰려있다는 중심지로 이동했는데,
조금씩 주변에는 다양한 음식점, 기념품점, 산악용품점 등 색다른 모습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곳은 마치 트래킹을 떠나려는 여행자들을 위한 전진기지 같았다.

값싼 식품점, PC방,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 리조트, 여행사, 약국, 클럽...
더불어 중심가 옆에 위치한 아름다운 호수, 저 멀리 보이는 눈덮힌 산봉오리까지.
그들을 위한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었다.


새로운 곳에 도착했다는 설레임과,
(인도에 비하면) 깨끗한 도시를 바라보며 기분이 무척 상쾌했지만,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 이미 식욕의 노예가 되어버린 우리는,
카트만두에서부터 가이드북에 구멍이 날 정도로 수없이 볼펜으로 동그라미 쳐놨던 포카라 맛집을 찾아,
하이애나마냥 주위를 두리번 거리기 바빴다.





몇번 길을 헤맨 끝에, 비로소 우리가 찾던 음식점을 찾아냈고,
그제서야 절대반지를 얻은 골룸처럼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아직까지 속이 다 나은게 아니였기 때문에,
탈이 심해지지 않도록 양도 적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먹을 수 밖에 없었는데,

그렇게 천천히 음식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다가,
문득 음식점 벽면에 붙어있는 한장의 쪽지를 발견 할 수 있었다.




놀랍게도,
거기엔 'Mr.유' , 누나, 그리고 내 이름이 써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며칠전에 '소나울리'에서 '포카라'로 간다며 헤어졌던 '오르차' 누나들이 적은 것이었다.

'Mr.유'의 이름도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사람도 포카라에 온다고 한 것 같은데,
반갑기도 하고,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그런데 그 무엇보다....

우리가 포카라에 도착하면,
식탐때문에 반드시 이 음식점을 들릴 거라고 예상한 '누나들의 빈틈없는 판단'에 소름이 돋았다. -_-;
(우리의 행동 양식을 꿰뚫고 있잖아!!??)




식사를 마치고,
누나들이 머물고 있다는 숙소를 찾아 길을 걸었다.

오른쪽으로 굽어진 길을 돌 무렵,
한 쪽에서 누군가가 나와 누나이름을 불렀다.

고개를 돌려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니,
'오르차' 누나 한명과 '마크'가 나란히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고락뿌르'에서 사라졌었던 마크.
오랜만에 만난 '오르차' 누나들.
게다가 뜬금없이 나타난 Mr.유.

모두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처럼 헤어졌지만,
결국 포카라에서 다시 만나게 됐다.


하기야, 네팔에서 트래킹 하겠다고 떠난 사람들의 종착역이야 뻔하지 않겠는가.